코로나19 시대- 경북의 언택트 관광지를 찾아
② 영덕과 울진 바다가 펼치는 ‘아름다움의 마법’

영덕 대진항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일출. 장엄하고 웅장하다.

한국 사람들에게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대략 50~60개 나라를 여행한 선배와 영덕의 해변을 돌아본 적이 있다.

1990년대만 해도 한국인 관광객을 찾아보기 어려운 외국의 여행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이 선배가 필리핀 보라카이의 화이트비치를 찾았던 땐 그 아름다운 섬의 80% 이상 지역이 전기 없이 살았다고 하니. 최근엔 어떠냐고? 필리핀 대부분의 해변은 거의 부산 해운대 수준으로 한국인이 넘쳐난다. 거기에 중국인들까지 합류한 게 이미 오래 전이고.

사파이어 색채로 빛나는 태평양의 낭만? 이제 보라카이엔 그런 것 없다. 비단 그곳만이 아니다. 발리, 푸켓, 코사무이, 나트랑, 다낭, 시아누크빌…. 동남아 대부분의 해변 휴양지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다시 그 풍경이 재현될 게 분명해 보인다. 바이러스가 창궐해 각 나라가 국경을 봉쇄하고 있는 이 시기엔 해외여행의 꿈은 잠시 버려둬도 좋을 듯하다. 북적이는 외국 바닷가 이상으로 아름다운 해변이 한국에도 적지 않으니.
 

완만한 경사·얕은 수심의 ‘대진해수욕장’

8㎞의 모래벌판 펼쳐진 ‘고래불해수욕장’

한국 현대사 기억 서린 곳 ‘장사해수욕장’

멋진 경치와 다이빙 명소의 ‘나곡해수욕장’

망양정·왕피천과 맞닿은 ‘망양정해수욕장’

울창한 소나무 숲 인상적인 ‘구산해수욕장’

대게·생선매운탕 등 맛깔스런 음식과

고운 모래벌판 걸으며 낭만 여행 즐겨

고래불해수욕장의 소나무 숲과 바다.
고래불해수욕장의 소나무 숲과 바다.

◆ 지중해가 아름답다고? 그렇다면 영덕 해변에서 보는 바다는?

“바다 빛깔만으로 이야기하자면 여기가 지중해보다 더 멋진 걸.”

앞서 언급한 선배가 영덕 방파제에 앉아 가장 먼저 던진 말이다. 기자 역시 코발트블루 색채로 반짝이는 이탈리아 아말피와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해변에서 며칠을 머문 적이 있다.

누군가 “그래서? 한국 동해의 바다 색깔은 유럽만 못한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이렇게 답하겠다. “아니, 그것들 못지않다. 때론 더 아름다운 것 같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영덕의 해변들이라 어느 곳을 내세워 먼저 안내해야 할지 어려운 수학 문제를 받아든 중학생의 심정이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먼저 대진해수욕장의 일출을 빼놓으면 영덕군민 모두가 서운해 할 터. 그 도시 북쪽에 자리한 영해면 해안 대진리를 중심축으로 펼쳐지는 가슴 탁 트이는 풍경은 현대화 된 거대 도시에서 갑갑한 일상을 견뎌온 여행자를 소풍 앞둔 아이처럼 들뜨게 한다.

해수욕장의 경사가 급하지 않고, 수심도 야트막해 여름철엔 가족 단위 피서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물의 맑기? 그런 건 새삼스럽게 물을 필요도 없고, 구구절절 답하기엔 입이 아프다.

밝아오는 새벽. 이곳에 차를 세우고 떠오르는 해를 본다면 지난 1월 1일 ‘관광객 통제’로 어느 해변에서도 일출을 쉽게 보지 못한 아쉬움이 단숨에 사라지지 않을까? 6개의 해안마을이 어깨를 맞댄 영덕 병곡면. 여기에 8㎞의 근사한 모래벌판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그곳의 이름을 낭만적이게도 ‘고래불해수욕장’이라 부르고 있다. 이미 전국적으로 이름이 잘 알려져 여름철엔 숙소 예약이 어려울 정도. 그러나 낭만을 아는 여행자라면 ‘겨울 고래불’에서 더 큰 매력을 느낄 수도 있을 터. 당연지사 숙소를 잡기도 수월하고, 식당에서 제대로 대접받기도 더 좋은 시즌이 지금이다.
 

장사해수욕장에 재현된 학도병들의 상륙선 문산호.
장사해수욕장에 재현된 학도병들의 상륙선 문산호.

◆ 영덕 바다를 헤엄치던 고래를 본 고려 충신 목은 이색은….

‘고래불’이란 명칭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끝끝내 절개를 지킨 고려의 충신 목은 이색(1328~1396)이 근처 산에 올라 커다란 고래들이 용의 기세로 헤엄치는 걸 보고 만든 것이라 전해진다.

자신의 아들과 딸이 장쾌하고 드넓은 기상을 가지길 원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라면 꼭 한 번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가보길 권한다. 울울창창 사철 푸른 기상을 간직한 주변 소나무 숲 또한 장관이다.

남정면 장사리에 자리한 장사해수욕장은 잊어선 안 될 한국 현대사의 기억이 서린 곳이다.

근처 부경온천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거나, 모래가 신발에 잘 붙지 않는 해변을 유유자적 산책하는 것도 좋지만, 장사상륙작전을 통해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해낸 어린 학도병들의 숭고한 뜻을 새겨보지 않는다면 서운한 여행지다.

서울과 대전 등에서 기차를 이용해 포항으로 오는 관광객이라면 포항역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40~50분 바닷가 풍경을 만끽하며 장사해수욕장에 가도 좋다. 이 역시 영덕 여행이 주는 색다른 맛이다.

이외에도 영덕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다 빛깔 곱고 사람들 친절하며 맛깔스런 음식이 가득한 해변이 다수다. 오보해수욕장과 경정해수욕장, 하저리해수욕장과 남호해수욕장 등이 그렇다.

 

짙푸른 바다가 시인의 마음을 가지게 해주는 울진 풍경.
짙푸른 바다가 시인의 마음을 가지게 해주는 울진 풍경.

◆ 신경림의 시가 절로 떠오르는 울진의 바다 풍광

영덕에서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곧 만나게 되는 게 울진군 후포항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먹음직한 겨울 진객(珍客) 대게와 얼큰한 생선매운탕으로 전국 각지의 미식가들을 유혹하는 공간.

그런데 이처럼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먹을거리만을 떠올린다면 좀 아쉽다. 조태일, 이성부, 정희성 등과 함께 한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시인 신경림(85)은 그 옛날 후포 바다에 와서 이런 시를 썼다. 함께 읽어보자.

동해바다

-후포에서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 한 잘못이 맷방석만 하게

동산만 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 보다

멀리 동해 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아스라한 수평선이 인간에게 선물하는 귀한 것 중 하나가 ‘용서와 화해’다. 신경림은 자신에겐 너그럽고, 남들에겐 엄격하게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왜 나는) 동해처럼 너그러워질 수 없을까”라고 자문한다. 망망대해 앞에 선 시인다운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바로 이 시의 탄생지가 후포다. 울진 가장 남쪽에 자리 잡은 해수욕장으로 비교적 짧지만 서정 넘치는 250m의 백사장은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들이 손잡고 걷기에 모자람이 없다.

데이트의 큰 즐거움이라 할 ‘맛집 찾기’도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게 울진군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게는 물론 생선도 좋고 조개도 맛있단다. 이름난 ‘자장면 맛집’도 있다니 인터넷을 뒤져 찾아보는 재미를 느껴보시길.

울진군 북쪽 끝에서 여행자를 기다리는 건 나곡해수욕장이다. 여름에도 사람들이 크게 붐비지 않는 고적한 곳이니 조용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해변을 산책하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이다.

“기암괴석이 만들어내는 경치가 멋지고, 왕에게 올린 미역으로도 유명하며, 근사한 다이빙 포인트가 적지 않아 다이버들의 사랑을 받는 해수욕장”이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근남면 망양정해수욕장은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하나인 망양정(望洋亭)과 왕피천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2006년엔 전국 최초로 트라이애슬론 경기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기성면에 숨겨진 보물처럼 빛나고 있는 구산해수욕장은 평해읍에서 10리 북쪽에 위치했다. 우거진 소나무 숲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째서 울진이 ‘소나무의 고장’인지 절로 깨닫게 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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