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일주일 가까이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다. 요즘은 대구나 청도 기온이 다를 바 없다. 예년 같으면 청도 최저기온이 대구보다 4∼5도 정도 낮았는데, 그런 차이가 사라졌다. 영하 18도 가까운 추위를 경험하는 일은 행운이다. 내가 좋아하는 기온이 영하 18도이기 때문이다. 바람 한 점 없이 쨍한 날 아침에 맞는 영하 18도의 상큼함은 형언하기 어려운 기쁨이다.

우리나라 추위에는 언제나 바람이 동반한다. 날이 추워질 기미를 알려주는 것도 바람이고, 기온이 오를 징조를 통지하는 것도 바람이다. 겨울에 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날이 차가워질 것이고, 차갑던 날에 바람이 잠잠해지면 포근해지기 마련이다. 이 땅에 살면서 체득한 이치 가운데 하나다. 러시아인들이 기장(機長)의 인천공항 일기예보에 환호하다가, 공항 바깥에 나오자마자 괴로워하는 데에는 까닭이 있는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내부에 있는 도시들, 예컨대 베를린이나 모스크바 혹은 이르쿠츠크에는 바람이 드세지 않다. 그곳의 추위는 바람 없이 생짜로 내려가는 한기(寒氣)에서 발원한다. 영하 30도의 베를린과 영화 28도의 이르쿠츠크, 영화 25도의 흑룡강 추위의 경험은 인상적이었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일상을 영위하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겨울을 맞이하고 보낸다.

언론에서는 이번 추위의 원인 제공자가 북극이라면서 ‘북극한파’라는 별칭(別稱)을 부여한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북극 기온이 상승하고, 찬 기운을 막아주던 제트기류는 상대적으로 약해져 북극의 찬 공기가 그대로 남하해 한파가 닥쳤다는 것이다. 호모사피엔스가 불러온 기후재앙의 결과로 이해하면 속 편할 듯하다. 스웨덴의 18살배기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강력한 저항운동이 절실해 보이는 까닭이 여기 있다.

북극한파가 가져다준 선물도 소중하다. 한국인들의 지리적 이해도를 강화한 점을 들 수 있겠다. 한반도 남단, 그것도 서울과 경기도 인근의 미소(微小)한 공간에 갇힌 사람들의 시선을 확장한 공이 크다. ‘우물 안 개구리’도 유분수지, 날이면 날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타령이 끊이지 않는 나라의 좁디좁은 소견이 가관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북극이라는 지명과 그곳의 맹추위가 잠자는 한국인들의 협소한 의식을 일깨운 셈이다.

이런 정도의 추위를 감내하고 살아가는 지구촌 사람들이 많다는 인식의 확장은 덤이다. 극동 러시아의 야쿠티아 자치 공화국에 자리한 오이먀콘 초등학생들은 영하 52도 아래로 떨어지면 등교하지 않는다. 영하 56도까지 내려가야 휴교한다고 알려져 있다. 눈보라 치는 영하 50도의 날씨에 학교에 가는 7~12살짜리 아이들을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과잉보호가 넘쳐나는 이 나라 학부모들은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다.

여름에 우리를 괴롭히는 수많은 병해충이 이번 추위로 상당수 절멸했을 가능성도 있다. 덕분에 올여름에는 모기나 각다귀가 조금은 적을 듯하다. 세상사 대차대조표는 결국 영(零)이다. 조금은 여유롭게 북극한파와 대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