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한지 등에 비친 불빛 - 한지공예가 안순금 명인

언젠가는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살았다는 안순금 씨.

먼 산에 눈이 하얗게 덮여 있다. 겨울 같지 않게 포근하던 날이 간밤에 내린 눈으로 갑자기 추워졌다. 뺨에 닿는 눈바람이 매섭도록 차갑다. 시원하게 뚫린 월드컵로를 달려 골목에 자리 잡은 갤러리에 닿았다. 찻집을 겸한 규방 공예의 갤러리였다. 자동문이 활짝 열리자 갤러리 곳곳에 자리 잡은 한지공예품의 고고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왔다. 장롱과 뒤주, 찻상 등, 예술성과 실용성을 겸하여 우리의 삶 속 깊숙이 자리 잡은 물품들이 눈 가는 곳마다 품위 있는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실내 가득 은은한 차향이 감돌았다. 이층으로 가는 계단 곳곳이 공예품이었다. 안순금 명인이 진홍빛 히비스커스 차를 가져왔다. 새콤한 맛이 살짝 감도는 히비스커스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다.

한지공예와 전통차? 고전적이라는 점에서 조합이 잘 맞는 만남이다. 전통차와 한지공예 중 어느 쪽이 먼저였느냐고 물으니 한지공예가 먼저라고 했다.
 

공예품에 한지를 꽃잎처럼 찢어 붙이는 건 예사로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창작

혼수함이 준비되어 있으면 그게 걸맞은 며느리가 들어온다는 옛말을 되새기는

명인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나는 규방 공예품은 아름다운 재창조의 예술

“공방을 운영하며 찻집을 연 이유가 뭔가요?”

“사람들이 서먹해하며 공방에 들어오지 못하는 거예요.”

공방을 해나가려면 사람을 모아야 하고, 누구나 편안히 들어와서 한지공예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공방만으로는 사람들을 불러들이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생각다 못해 명인은 한지공예에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공방에 선뜻 발을 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출입을 위해 전통차를 생각해냈다. 전통차가 사람을 편안한 마음으로 오게 해주는 구실이 되었다. 공방을 운영해온 것이 30년이란다.

“한지공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뭐예요?”

갓 결혼한 새댁 시절에, 일반 공예를 비롯한 여러 가지 강좌를 배우러 다니다 우연히 인사동에 들렀다가 장독 모양의 쌀독을 발견한 것이 한지공예의 시작이라고 했다. 쌀독의 재질이 한지라는 말을 듣고 무척 놀랐단다. 장독 모양의 풍성한 쌀독을 집안에 들여놓으면 복이 가득 담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시작한 것이 한지공예였다고. 처음 그 느낌이 맞아 떨어져서 명인은 지금까지 행복한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세련된 도시풍의 차림새가 한지공예와 전통차에 대한 인식을 현대화시키는 느낌이었다.

쌀독을 만난 이후 명인은 서울까지 기차를 타고 다니며 한지공예를 배웠다. 사범자격증을 따고 난 후에 남편과 의논했다. 공방을 열고 싶다는 말에 남편은 손님이 오든지 안 오든지, 잘 되든지 안 되든지, 스트레스 받지 말고 공방을 놀이터로 생각하라며 허락해주더란다. 명인은 그렇게 해서 눈여겨 봐둔 자리에 공방을 열었다. 솜씨도 서툴고 가게도 처음이지만 생각 외로 사람들이 호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기소침해졌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는가. 기운이 빠질 때도 있었지만, 손님이 없어도 실망하지 말고 공방을 놀이터로 생각하라는 남편의 말에 힘을 얻었다. 명인은 누가 공방을 찾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날마다 공방에 출근해서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었다.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아지며 공예품이 늘어나고 덩달아 자신감도 생겼다.

“남편이 적극적으로 지지를 해주셨네요.”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라고 해야겠죠.”

서울에서 재료를 사오고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하고, 밤을 새워가며 작품을 만드는데 몰두할 수 있었던 것도 남편이 조용히 지켜봐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명인의 의식이 매우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었다. 명인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일을 할 사람과 하지 않을 사람의 차이가 또렷해진다. 일을 할 사람은 매개체를 받아들이는 자세와 하고자 하는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의욕이 남다르다. 그 강한 의욕으로 그녀는 대한민국 명인 자격증을 따고, 아시아 웍 페스티벌과 미국 LA 월드페스티벌에서 우수상과 대상까지 따냈다.

공방을 연 후 명인은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스피치 교육까지 받으며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했다. 한지공예 강의를 하려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야 했다. 아무런 확신이 없는 시기인데도 그녀가 흔들리지 않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해도 성과 없이 혼자 노는 휴지기를 견디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명인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언젠가는 내가 하는 일을 사람들이 알아줄 거라고 믿었어요.”

공방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나누기 위해 먼 지방까지 강의를 하러 다녔다. 강의를 할 곳이 있으면 그곳이 어디든 서슴지 않고 찾아다니다 보니 그게 삶이 되더라는 말을 듣고,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믿어주는 자신감이라고 확신했다. 가끔 전시회에 내놓을 공예품을 의뢰받을 때마다 스승이 있어서 의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혼자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게 익숙한 터라 두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30년 전 인사동에 들렀다가

장독 모양의 쌀독을 발견한 것이 한지공예의 시작,

풍성한 쌀독을 집 안에 들여놓으면 행복이 가득 담길 것 같은

 

마음으로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두 시간 강의로 만들 수 있는 작품이 뭐예요?”

“부채나 지갑, 휴지케이스 정도?”

소품이라고 해도 하루 만에 작품을 완성하기 어려울 텐데,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느냐고 물으니 체계적으로 강의를 이끌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주어진 시간 안에 작품을 완성하는 게 관건이어서 재료를 미리 자르고 재단해두는 것을 시작으로, 실기강의를 차질 없이 해나가기 위해 강의 내용을 머릿속에 훤히 숙지한다고.

“청송 농협기술센터에서 강의한 적이 있어요.”

딸의 산후 구완을 하러 왔던 부인이 어느 날 공방에 온 적이 있는데, 그 부인이 조심스레 가게 문을 열고는 들어가도 되느냐고 묻더란다. 명인은 편안하게 들어와서 구경하라며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그날 공방에 한참 머물다 간 부인이 청송에 와서 강의를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농업시술센터 관계자와 의논한 후 강의시간을 잡았다며, 청송 강의가 고리처럼 연결이 되어 명인을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게 해주더란다.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실기강의여서 자칫 분위기가 흐트러지면 소품을 완성할 수 없기 때문에 명인은 미리 치밀한 계획을 짜두었다. 준비한 재료를 앞자리의 몇 명에게 나누어주게 했다며, 수강생이 120명이어서 체계적으로 일을 추진하지 않으면 재료를 나누다 시간이 다 가고 만다는 말에 공감했다. 한 명이라도 자신을 쳐다보지 않으면 안되도록 마이크만으로 강의를 했는데도 실수 없이 마칠 수 있었던 게 기적 같았다고 했다. 강의를 마치고 청송 노귀재를 넘어오며 깔끔하게 일을 끝냈다는 자존감으로 너무나 행복해서, 돌아오는 내내 부처님 감사합니다, 라는 기도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노귀재를 넘어오던 추억을 되새기며 명인이 잠시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가장 아끼는 작품이 뭐예요?”

“혼수함이요.”

명인이 가리키는 곳에 삼단으로 포개어 놓은 혼수함이 있었다. 아들을 가진 사람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라며, 명인은 혼수함이 준비되어 있으면 그게 걸맞은 며느리가 들어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고 했다. 혼수함은 조상의 얼이 깃든 물품 중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3단 혼수함을 만드는데 두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혼수함에 착색되어 있는 목단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혼수함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목단꽃을 찢어 붙이는 것이라던가.

“꽃을 찢어 붙여요?”

공예품에 한지를 꽃잎처럼 찢어 붙이는 건 예사로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숙련의 기간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빙긋 웃는다. 쉬워 보여도 어렵다고. 모든 예술 작품이 그렇듯이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은 작가의 다양성에서 새롭게 재창조되기 때문이다. 문화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데서 성장한다. 작가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나는 규방 공예품의 아름다운 재창조 역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위해 끝없이 노력을 기울이는 작가의 열정이 끓고 있는 한 계속된다. 자신의 작품이 새로움을 추구한 순수 창작품이라는 사실에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는 그녀의 꼿꼿한 자존심과 용기가 아름답다.

/글 장정옥

소설가(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