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오랜 세월 지구촌 모범이었던 미국 민주주의가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도 훨씬 더 지독한 트럼피즘(Trumpism) 바이러스에 걸려 역사에 남을 오욕을 당하고 있다. 트럼피즘은 지난 2016년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제45대 대통령의 극단적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지지자들의 광신주의를 뜻한다. 트럼피즘은 백인 보수층의 권익을 우선하는 국수적 정책을 선동하면서 세계를 선도해온 미국의 보편적 가치를 무참히 파괴해온 선동정치다.

트럼프 시대에 지구촌은 이 트럼피즘에 입각한 미국 대통령의 예측 불허 언행에 몸살을 앓았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널뛰기식 돌발외교에 따른 북미 관계의 냉탕 온탕 변덕으로 한반도는 ‘북한 비핵화’라는 시대적 숙원을 둘러싼 널뛰기식 진동을 겪었다. 한때 한반도 평화에 획기적 진전을 기대하기도 했으나, 근본적인 변화는 단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한 채 교착상태 내지는 악화일로다.

지난해 11월 치러진 제46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표를 도둑맞았다’며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트럼피즘 바이러스에 중독된 지지자들은 급기야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쑥대밭을 만들었다. 트럼프는 늦어도 한참 늦은 ‘정권 이양’ 다짐을 내놓았다. 의사당 난입에 대해서 “그들이 책임질 일”이라는 트럼프의 비열한 모습에서 양두구육(羊頭狗肉)의 극치를 본다.

트럼피즘이 미국 민주주의를 무참히 망가뜨리는 장면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한걱정을 늘어놓는다. 팬덤정치의 폐해가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우리 정치의 현실과 정확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광신정치가 나라를 망가뜨린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중국의 홍위병 사태와 독일의 나치즘이 남긴 상처는 깊고도 넓다.

우리나라 팬덤정치의 병증(病症) 역시 이미 곪을 대로 곪아 있다. ‘태극기 부대(극단적 친박근혜계)’와 ‘대깨문(극단적 친문재인계)’이 문제다. 광신정치는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정신장애 군중들을 양산한다. 광화문 집회와 서초동 친조국 집회에서 우리는 이성이 완전히 마비된 중우정치의 막장을 보았다. 미국 민주주의의 망신이 우리에게 주는 자각의 신호는 명징하다.

이제 더 이상 팬덤에 기대는 정치와 정치인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극단적 편견과 확증편향을 유도할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선동질 유튜버들의 범람은 위험수위를 넘긴지 오래다. 결국은 우리 유권자들의 책임이다. 현실적 이해관계까지 얽힌 저질 정치꾼들의 농간질에 놀아나는 국민이 문제인 것이다. 정치가 제자리로 돌아가려면 그들 앞에서 딱한 먹이사슬이 되고 있는 유권자들이 각성해야 한다. 국민이 현명해지지 않으면 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 제발 더 이상 놀아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이렇게, 편향된 이념 장사꾼들의 흉계의 꼭두각시 놀음으로 나라를 망치는 열등 국민으로 치욕스럽게 살아갈 것인가. 아직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