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신축년 2021년 올해 전국의 해맞이 명소가 폐쇄되었다. 달갑잖은 코로나19의 선물이었다. 해마다 1월 초하루면 해맞이 차량으로 몸살을 앓던 국도 7호선도 조용했으리라. 해맞이 차량 행렬에 끼지 않으면 무슨 사달이나 나듯 호들갑 떨던 사람들은 어디서 뭘 했을까, 궁금하다.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맞물려 있다. 고3은 대학 신입생이 되고, 대졸자는 사회 초년생이 되는 이치와 같다. 노자(老子)는 그것을 ‘전후상수(前後相隨)’로 풀었다.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는 뜻이다. 등산 가다가 길을 잘못 들으면 되돌아서야 한다. 끝에 가던 사람이 선두가 되고, 가장 앞선 사람이 최후미에 자리한다. 앞서간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고, 뒤처져 있다고 위축될 일도 아니라는 얘기다.

‘전후상수’는 한국인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을 연상하면 좋겠다. 가난한 집 자식들이 공부든 노동이든 열중하여 사회에서 대접받는 자리에 올랐을 때 하는 말이다. 지난 세기 6-70년대 우골탑 신화는 우연이 아니었다. 산업화의 첨병으로 활약했던 신진기예는 대개 개천에서 나온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었다. 그들이 이룩한 고도성장 신화가 오늘의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이었다.

그런데 21세기에 개천과 용의 관계는 전면 실종되었다. 요즘 개천에는 용은커녕 토룡조차 찾기 어렵다. 실지렁이 몇 마리 떠돌 뿐 적막하기 그지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와 관련된 기사는 차고 넘친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런 현상의 근저에 자리하는 불의와 불평등이다. 아빠와 엄마 찬스, 부의 대물림과 불법 편법 무법 초법 탈법 같은 무소불위 권력자들의 ‘내로남불’에 잠재된 이데올로기가 두려운 것이다.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계층의 자유로운 이동이 무시로 일어나야 한다. ‘역동적인 대한민국’이라는 용어에서 긍정적인 면모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거대한 호수가 아니라, 실개천에서 천하를 호령하는 용들이 욱일승천하는 기세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전혀 반대 아닌가. 사회 기득권층이 막강한 특권을 행사하고, 그것을 대물림하는 풍경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병약하게 하는 근간이다.

아침저녁으로 들려오는 소식은 어둡고 출구 없는 칠흑 같은 무간지옥을 연상시키는 흑색 스릴러 영화와 다르지 않다. 외부에서 언론 뉴스만 본다면 한국 사회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고 휘청거린다. 과연 그러한가, 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젊은 세대의 장탄식과 고통스러운 한숨은 분명 이유가 있다. 그들의 비상(飛翔)과 장쾌한 미래기획이 실현될 방도를 마련해주는 것이 나이 먹은 축들이 할 일이다.

부동산 투기로 자식 세대의 돈을 갈취한 자들은 그만 자제했으면 한다. 전국 곳곳의 기획부동산에 철퇴를 내리지 않는 국토부의 소임은 무엇인가?! 젊은이들이 꿈과 미래를 걸 수 있도록 선명한 방침과 실행력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