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에코프로’ 이동채 회장
직원 1명과 시작한 ‘에코프로’
20여년 만에 1천700명 규모로
7개 가족사 중 2곳이 상장기업
제일모직과 양극소재 개발 맞손
매출액 1조 그룹으로 키워내
원료 수입·제품 수출 최적지인
영일만산업단지 10만평 부지에
꿈꿔왔던 양극재 프로젝트 완성
10년내 폐배터리산업 선도할 것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세계 산업기류 재편으로 전기차 이차전지 산업은 ‘코로나 무풍지대’가 됐다. 이차전지 핵심소재인 양극재를 생산하는 에코프로의 투자 성과도 가시화하고 있다. 이동채 회장은 “전기차 시대가 반드시 도래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에코프로 제공

많은 사람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해 얘기한다. 예측은커녕 대응하기에도 바쁜 지금이지만, 바이러스 공포 속에서 분명해진 건 앞으로 미래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변하리라는 큰 흐름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동안 신성장동력으로 평가받는 데 그쳤던 친환경, 에너지와 같은 특정 산업군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유망주에 올랐다. 특히 유럽연합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들이 환경 규제를 통한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전기차 시장이 호황을 맞았다.

지난 1998년에 설립된 (주)에코프로(대표이사 이동채)는 대기환경 사업을 기반으로 전기차 핵심부품인 이차전지 양극재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최근 전 세계 산업 생태계에 지각변동이 일면서 전기차 시장의 급성장과 함께 에코프로는 가파른 성장세에 올라탔다. 정부는 2022년을 미래차 대중화의 원년으로 삼고 전기차용 이차전지를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기로 했다. 이동채 회장은 “이차전지는 전기차뿐만 아니라 앞으로 항공운수업을 포함한 전 영역으로 확장돼 4차 산업시대의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에코배터리 포항캠퍼스’ 완공땐
폐배터리 재활용 양극재 생산이
세계 최초로 한 곳서 이뤄집니다
2024년까지 총 1조7천억 규모
포항에 집중 투자할 겁니다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액이 1조원에 달한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초래한 유례없는 위기 상황에서 기업 성과를 창출하고 성장을 이끈 동력이 무엇입니까?

“코로나 유행을 계기로 친환경 에너지 산업이 국제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전기차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이차전지 배터리 산업도 성장 구도에 진입했습니다. 그간 축적된 기술과 품질 경쟁력이 이러한 산업 기류에 힘입어 좋은 결실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회계사 출신이신데, 사업 성공의 촉이라고 할까요. 기후환경 분야에서 어떤 특별한 비전을 보았습니까?

“지구 온난화와 온실가스 문제로 이산화탄소 감축이 의무화된다면 언젠가 전기차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90년대 후반에 ‘온실가스 관련 기술 및 솔루션 사업’을 내걸고 에코프로를 만들었는데, 그때도 물론 환경 문제가 대두되긴 했지만 시장 규모가 작아서 실제로 사업을 추진하는 데 여러 제약이나 어려움이 많았어요. 결국 다른 환경사업 아이템을 찾던 중 2004년쯤 이차전지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이차전지의 핵심소재인 양극재를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었어요. 때마침 제일모직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양극재를 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길로 찾아가 우리도 양극소재 개발에 힘을 보태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제일모직 입장에서는 에코프로 말고도 “소재 개발을 위한 아이디어가 있다”며 찾아오는 기업들이 줄을 섰을 텐데요.

“당연하지요. 여러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초고용량 양극활물질 공동개발’이라는 국책과제를 함께 진행하게 됐습니다. 우리 회사는 양극재에서 가장 중요한 중간소재인 전구체 개발을 맡았어요. 그런데 연구성과가 나오기도 전에 제일모직이 중도 포기하겠단 결정을 내렸습니다. 공동개발 과제였기에 우리도 사업을 계속 이어갈지 선택해야 했어요. 고민이 많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에코프로가 있겠지요?

“분명 미래 전기차 시대에는 용량이 크고 출력이 강한 양극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란 ‘촉’을 따랐습니다. 제일모직으로부터 관련 기술이나 특허, 설비 등을 유상으로 양도받아 독자적으로 차세대 양극재 개발을 시작했어요. 처음부터 ‘인간을 편하고 이롭게 하는 기술’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란 믿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초창기에 회장님과 직원 1명, 이렇게 단 두 분이서 에코프로를 창업하셨지요?

“지금은 직원 수가 1천700명 정도 됩니다. 7개의 가족사가 있는데 이 중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이 상장기업입니다. 불과 22년 새 매출 1조원에 바이오나 게임 회사를 제외한 정통 제조업으로 코스닥 시가총액 1∼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만큼 투자도 통 크게 하셨습니다.

“포항에만 2010년 10월 기준으로 약 3천200억원을 들였어요. 올해는 1조원을 투자하기로 포항시와 앞서 협약을 맺었는데, 회사 내부에서는 이보다 70% 정도 더 늘려 2024년까지 총 1조7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돈의 흐름이 포항으로 집중되는듯합니다.

“지금까진 본사가 있는 청주를 중심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왔다면, 올해부터는 포항이 중심입니다. 전체 생산량이나 부가가치, 매출액 부문에서 포항이 차지하는 비중이 청주를 앞서는 첫해가 될 것입니다.”

-왜 포항입니까?

“이차전지 양극재 생산을 위한 최고의 제조 생태계를 조성하고 싶었습니다. 장소를 물색하던 중 포항 영일만산업단지가 눈에 띄었어요. 원료 수입이나 제품 수출에 용이한 물류 입지적인 측면에서도 탁월했고요. 제가 찾던 최적지였습니다.”

-회장님이 꿈꾸는 양극재 생태계가 ‘에코배터리 포항캠퍼스’로 현실화하는 건가요?

“현재 영일만산단 10만평 부지에 짓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폐배터리를 재활용해 양극재 완제품을 만들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한 곳에 집적된 하나의 단지가 국내·외 최초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간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해온 양극재 중간소재를 국내에서 직접 생산할 수 있게 되고, 수입산 저가의 니켈이나 코발트, 리튬을 고도의 기술로 정제해 이차전지용 고급 소재로 전환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시간이나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만 있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보통 국내 이차전지용 양극재 기업들은 전체 부가가치의 25∼30% 정도를 몫으로 가져갑니다. 예를 들어 양극재 가격이 킬로그램 당 20달러라고 친다면, 생산회사의 부가가치는 5∼6달러 정도입니다. 이걸로 임직원들 급여와 설비 감가상각, 전기나 가스비 등 각종 비용을 처리해요. 여기다 또 미래를 위한 투자까지 계획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킬로그램 당 13∼14달러의 양극재를 창출해 부가가치를 65∼7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어떨까요? 배터리 고부가가치 생산은 기업에 큰 경쟁력이 됩니다.”

-포항시도 ‘이차전지 도시’를 목표로 함께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폐배터리 리사이클 특구로 지정된 포항시가 이차배터리 포항캠퍼스에 다양한 기업이 입주할 수 있도록 매력적인 유인책을 많이 내놓았으면 합니다. 리사이클 업체뿐 아니라 양극 및 음극 업체 등 연관 산업이나 관계기관들로 영역을 넓혀야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향후 10년내 폐배터리 산업이 하나의 커다란 비즈니스 분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돼 포항 블루밸리국가산단의 전망도 매우 밝다고 봅니다.”

-사실 어려움을 겪는 중소업체들이 많습니다. 대기업과 비교하면 기술력이 받쳐주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규모나 원가 경쟁력 등을 이유로 소재를 개발해 시장화될 때까지 버텨내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올해는 특히 코로나 충격이 컸습니다. 우리 지역에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업체들이 많은데, 이들을 위한 사업 노하우를 제안하신다면요.

“기술 그 자체만으로 경쟁력이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업에 중소기업들까지 뛰어들어 성공하기란 굉장히 어렵습니다. 남들은 하지 않으려 한다든가 혹은 다수가 주목하지 않는 분야에서 개발 가치가 있는 사업 아이템을 찾는 게 우선입니다. 개발이 힘들고 국산화하기 어려운 기술부터 찾아야 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에 가치를 둡니다. 회장님은 여가를 어떻게 보내시나요? 골프 실력이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만.

“골프를 좋아하지만 실력이 꽤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웃음).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아요. 매일 저녁 8∼9시가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퇴근합니다. 귀가 후에는 휴식을 취해요. 무념무상, 일명 ‘멍 때리는 시간’을 30분 정도 갖기도 하고요.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도 즐겨 봅니다.”

포항 대성면 남성리에서 나고 자란 이동채 회장은 포항중학교 졸업 후 대구상업고, 영남대 경영학과를 나와 한국공인회계사를 지냈다. 1남7녀로 8남매 대가족에, 집안 형편은 넉넉지 않아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고향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추억을 하나 물었더니 “중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집까지 거리가 8∼10km 정도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까마득한데, 아침마다 두세 시간을 걸어서 학교에 갔습니다. 어린 나이에 힘든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장난도 치며 즐겁게 다녀서 그런지 유난히 그때 기억이 오래 남아있습니다”라고 했다. 등하교 왕복 시간을 따지면 하루 4∼6시간을 두 발로 걸어다니던 소년은 커서 전기자동차 시대를 앞당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김민정기자 mj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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