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영 <br>수필가
정미영
수필가

한 해의 끝자락과 한 해의 첫자락을 알리는 접점에 있다. 12월 31일. 새해 달력을 넘기자 1월이 맑은 얼굴로 나를 반긴다. 매년 이맘때가 되어 지나온 궤적을 돌아보면 분분히 떠나가 버린 시간과 만리장천을 건너가 버린 못다 이룬 꿈에 대한 미련과 후회가 교차한다.

신년 목표를 성실하게 세우리라 마음먹고 책상에 앉는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해맞이’란 낱말이 달려오면서 내 몸과 마음을 들쑤성거린다. 첫 다짐을 가슴에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새해 첫날 해돋이를 바라봤을 때의 마음가짐을 품고 생활하는 것은 아닐 런지. 잊고 살다가도 한 번씩 처음 마음먹었던 때를 되새기듯이,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새해 소망을 빌었던 순간을 떠올리면 다시 마음이 추슬러지고 힘차게 분발하게 된다.

새해 아침을 호미곶에서 맞이하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기에 소원을 빌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해맞이 명소 중의 하나다. 나는 새벽 동이 트면서 빛줄기가 비출 때 제일 먼저 바닷가에 자리 잡고 경건한 마음으로 해돋이를 기다리려고 했다. 상생의 손 위로 물새들이 힘차게 날갯짓하며 비상하는 그 순간, 해오름에 흩뿌려지는 금빛가루를 맞으며 소망을 비는 내 모습이 바다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호미곶에서의 해맞이 기원은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올해 새해 소원은 친정어머니처럼 정화수를 떠놓고 빌어야겠다. 어머니는 매일 아침이면 대접에 정화수를 받아놓고 두 손 모아 기도한다. 그 모습이 늘 한결같다. 주택에 살 때는 이른 새벽 장독대 위에 물을 놓고 식구들을 위해 기원했다. 지금은 아파트 생활을 하니 싱크대가 장독대 역할을 한다. 그 옛날 우물에서 길어온 물은 정수기물이 대신한다.

내 기억 속의 어머니는 이 일을 잊은 적이 없다. 몸살이 나서 누워 있다가도, 모처럼 여행길에 올랐어도, 생수 한 사발을 떠놓았다.

“엄마, 어쩜 그리 부지런해.”

“물 한 그릇 떠놓는 게 뭐가 어렵노!”

어머니는 나에게도 권한다. 내가 보기에 기도할 경건한 장소를 찾아 집을 나서지 않아도 되니 번거롭지 않다. 하지만 어머니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비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 여름, 어머니와 함께 휴가를 보냈다. 어느 바닷가 근처에 하늘을 지붕 삼아 텐트를 쳤다. 그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어머니는 코펠 그릇에 물을 떠놓고 여행지에서의 안전을 빌었다.

나는 조그마한 그릇 안을 들여다보았다. 손바닥만한 그곳에 파란 하늘이 들어 있고 흘러가는 구름이 잠시 머물러 있었다. 바람과 새가 드나들기를 되풀이하기도 했다. 내가 무심코 보았던 어머니의 정화수는 생명을 담고 우주를 담고 있었다. 그냥 물이 아니라 어머니의 믿음과 정성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소원성취를 빈 물로 쌀을 안친다.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밥이라 친정에 들렀을 때 가끔 식사를 거르고 싶다가도 억지로 한 술 뜬다. 내 밥 먹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면 역시 먹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내 평범한 행동 하나에도 어머니는 행복해 하고 특별한 의미를 둔다.

어머니의 삶은 항상 식구들 위주다. 어머니의 촉각 더듬이 또한 항상 자식을 향해 열려 있다. 그래서인지 내 몸이 아플 때면 남편보다 엄마가 먼저 떠오른다. 뜨거운 것을 만질 때에도 ‘엄마’하고 소리 내는 것을 보면, 분명 그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은 ‘기도하는 어머니의 손’이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자식을 위해 먼저 기도하시고, 당신을 위해 눈물 흘리기 전에 자식을 위해 먼저 눈물 흘리시는 어머니의 손. 나이가 들면서 여성은 어머니를 닮아간다고 한다. 이제부터라도 식구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서툴지만 비손을 하련다.

신축년 새해를 앞두고 있는 지금은, 기원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