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처럼 가로막는 반누각식의 화암사 우화루. 화암사는 전북 완주군 경천면 화암사길 271에 위치해 있다.

꿈결에 다녀온 듯 어렴풋하지만 문득문득 사진첩을 펼쳐보듯 생각나는 절이 있다. 아름다운 오솔길, 속세를 등진 고독감이 눅눅하게 온몸으로 배어들던 산사, 나는 벼르고 별러 마지막 산사 기행을 화암사로 정했다.

새파랗던 청춘이 고스란히 살아서 반겨줄 것만 같아 마음이 설렌다. 하지만 멀고 먼 길을 달려 불명산 아래에 도착했을 때, 모든 기대감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넓은 주차장과 맞은편으로 뚫린 포장길 앞에서 변화의 예감은 적중했다. 신비롭던 오솔길은 넓고 완만해졌으며 가랑잎의 뒤척임조차 없이 산길은 적적하기만 하다. 도솔천을 찾아가듯 몽환적이던 그 가을날이 자꾸만 그리워진다. 오솔길에 취해 홀린 듯 따라가면 별천지처럼 숨어 있던 절, 화사한 단풍 속에서도 유난히 외로워 보이던 산사였다.

계곡물도 폭포수도 하얗게 얼어붙었다.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를 고로쇠나무 한 그루가 귀 기울이며 들을 뿐, 겨울 숲은 고요하다. 산은 가파르지만 길은 끝까지 친절하다. 나는 군데군데 잉크자국이 번진, 젊은 날의 일기장을 펼쳐보듯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달래며, 일말의 기대마저 무너져 내리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토록 다시 보고 싶었던 화암사 앞에서 선뜻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한참이나 서서 그 옛날을 회상한다. 먼 속삭임들이 하나 둘 마중을 나오고 나는 몇 미터 앞에서 조각난 퍼즐을 맞추듯 기억들을 조립한다. 큰 나무들이 몇 그루 잘려나갔지만 그 옛날의 애잔함은 보이지 않는다. 자기의 세계가 확고한 선비처럼 반듯하다.

밤 새 눈발이 날렸나 보다. 응달에 남아 있는 잔설을 뒤로 하고 절로 향한다. 사찰의 규모에 비해 높고 큰 우화루가 요새처럼 든든하게 앞을 가로막는다. 절의 배치로 보자면 우화루를 누하진입식으로 통과하여 경내로 들어가는 게 제일 흔한 방법인데 이곳 우화루는 반누각식으로 만들어져 아랫부분은 돌벽으로 막혀 있다. 요사채처럼 보이는 행랑채에 크지 않은 문이 있어 마치 여염집을 연상시킨다.

요사채 댓돌 위에 놓인 털신 한 켤레와 스님의 지팡이로 보이는 알루미늄 폴대가 벽에 기대어 있을 뿐, 인기척이 없다. 겨울바람 홀로 우화루 처마 끝에서 풍경을 타고 논다. 꽃비가 내린다는 우화루, 그 이름 앞에만 서면 왜 쓸쓸하고 처연해지는지 모르겠다. 지독히도 고독해 보이던 옛 기억과 달리 절은 엄숙하고 평온한 적요에 잠겨 편안하다.

주인 없는 집을 기웃거리듯 조심스럽게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ㅁ자 형식으로 전각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다. 작은 마당을 중심으로 주법당인 극락전이 제일 높게 자리하고, 마주보는 우화루와 그 옆에 적묵당이 서열대로 키 높이를 달리한다. 탑 하나 없는 마당과 적묵당에 딸린 부엌문 때문인지 절집이라기보다 자식을 대처로 떠나보낸 노부부가 살아가는 시골집 같기도 하다.

한마음으로 둘러앉은 어깨들 사이로 깊고 깊은 깊은 시간들이 살아간다. 절의 배치가 안정적이면서도 신비롭다. 외부의 나쁜 기운이 함부로 기웃대지 못하도록 경계라도 하듯 절은 폐쇄적일 수도 있다. 겨울 햇살 몇 줄기가 떨고 있는 우화루의 거친 마룻바닥, 투박한 나뭇결이 아름다운 목어, 적묵당 기둥에 박혀 있는 나비 모양의 짜깁기까지, 누수된 세월의 흔적들이 가슴을 뭉클거리게 한다. 무욕(無慾)의 작은 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서로가 서로를 향한 저 공(空)의 눈빛들에서 나는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맛본다.

국보 제 316호 극락전은 화암사의 주불전으로 중국과 일본의 건축에서 쓰이는 하앙 기법이 유일하게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건축물이다. 서까래가 빠져나온 처마, 그 밑에 길게 가로 놓인 처마도리 밑으로 조각된 용머리들이 보인다. 그것이 하앙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백제 건축에 주로 쓰였지만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절에 대한 연혁은 전해지는 게 없고 조선 초에 세워진 중창비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머물며 수도했다는 내용만 전해진다.

적묵당 차가운 툇마루에 앉아 처마 끝으로 와 안기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적막한 숲에도 여름이면 별들이, 겨울이면 새하얀 눈들이 소리 없이 화암사 안마당에 내려와 예불을 볼 것이다. 산 속에 앉아 있으면서도 숲을 등지고 내면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절, 바위 위에 피어나는 한 송이 꽃 같은 사찰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고요 속으로 나는 빠져들어 간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극락전 법당 안은 바깥보다 훨씬 춥다. 손과 발이 시리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백팔 배를 시작한다. 다시 시작된 1년 4개월의 기행, 돌아보니 부처님의 자비로 충만했던 날들이었다. 날마다 백팔 배로 나를 돌아보고 하루를 접는 일은 이제 일기를 쓰듯 자연스러워졌다. 남은 세월도 소를 찾아가는 구도자의 자세로 한 걸음씩 성장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의 청춘이 쫓기듯 불안했다면, 지금은 새로운 희망과 목표가 있어 든든하다. 짧은 나와의 조우가 행복하다. 뒤안에서 일렁이는 대나무 숲, 한 자 한 자 떨어져 앉은 극락전 현판, 요사채를 지키는 늙은 모란에게도 두 손을 모은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기도들이 내 안을 채우자, 우화루 처마 끝에서 다시 풍경이 울어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