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에서 내려다 본 구룡포 어촌.

기억의 첫 장은 골목에서 시작된다. 근대문화역사거리로 되살아난 골목에는 옛날을 떠올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걷다보니 머릿속에서 스러져가던 풍경이 하나씩 깨어난다. 골목 끝에 추억을 파는 상점이 있어 쫀드기 하나 집어 든다. 쫄깃쫄깃한 옛 맛을 씹으며 언덕을 오르니 야트막한 동산 위에서 허름한 건물이 구룡포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잃을 것도 지킬 것도 없기에 폐교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 하릴없는 바람이 붙잡고 흔들어보는 국기 게양대를 바라보며 조회라도 하는 걸까, 운동장에는 작물들이 삐뚤빼뚤 줄을 맞추고 있다. 아이들의 수다는 다 어디로 날아갔는지 느티나무 위에서 참새들만 재잘거린다. 빈 책상이 점점 늘어 학교가 문을 닫기까지 참새는 출석부에 이름 한 줄 채우지 못했다. 첨성대모형을 바라보며 별처럼 반짝이는 꿈을 키우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떠났을까.

‘끼익!’ 교무실 문을 열자 우당탕거리며 자리에 앉는 아이들의 환영이 스쳐간다. 벽에 기우뚱 기댄 뜀틀과 먼지를 뒤집어쓴 구름판 위에 줄다리기 밧줄이 축 늘어져있다. 아이들의 마지막 낙서를 붙잡고 있는 칠판 앞에서 생활기록부를 툭 건들자 사진 몇 장이 떨어진다. 촌스런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추는 언니들, 두 줄이 선명한 하늘색 운동복을 입고 손등에 1등 도장을 찍기 위해 달리는 주자들, 가을볕에 그을린 그들의 운동회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초점이 흐려서인지 인물보다 많은 수를 뽑았는지 앨범 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한 사진은 여태껏 오지 않은 주인을 기다린다.

내 마음속에도 학교가 있었다. 걸음이 느린 내게 운동장은 뜀박질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움직이는 그림이었다. 그네 타는 아이의 흔들림, 지구본을 열심히 돌리는 친구의 발동작, 아침조회 때 미끄럼틀 너머에서 철거덕철거덕 내달리던 기차. 쉬는 시간이면 그것들을 스케치북 위에 담았다. 단풍이 들면 온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뒷동산에 올라 몰래 훔친 언니의 물감으로 달력 뒷장에다 풍경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화가가 되는 꿈을 한 장 한 장 꾸었다.

어렸을 적에는 꿈을 꾸면 그것이 내게로 다가올 거라고 믿었다. 오늘 벌어야 내일 끼니를 거르지 않던 20대, 결혼 후 반복되는 일상을 버리지도 못했다. 길고 지루한 정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싶어 무작정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배우고 읽으며, 하루를 서두르면서 살다보니 내 마음의 학교도 문을 닫았다. 어릴 적 저축해두었던 꿈을 곶감 빼 먹듯 사는 것이 인생이지만 지금이라도 꿈을 키우지 않는다면 다시 되살릴 수 없을 것 같았다. 꿈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끝나기 전에 불씨를 되살려야 했다.

‘삐그덕!’ 닫혀있던 문을 열었다. 창고에는 하나씩 버린 것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뒤죽박죽 쌓여있었다. 게시판에는 ‘나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탈색된 그림이 활짝 웃고 있었다. 스케치북과 연필을 찾아 입으로 호호 불었다. 구석에 드러누워 있는 구름판을 꺼내 놓고 몇 발짝 물러났다. 도움닫기를 하자 야무진 꿈들이 부스스 깨어나 기지개를 켰다. 매년 전시회를 여는 화가, 베스트셀러 작가, 여백이 없는 여권을 가진 여행가. 생각만 해도 행복한 꿈들이다. 그렇게 나는 마음의 학교 문을 열어 펄럭이는 깃발을 게양대에 올렸다.

김순희수필가
김순희 수필가

운동장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하늘은 각도기 전체를 다 써야 할 만큼 넓다. 수평선은 전교생이 두 팔을 뻗어도 모자랄 만큼 길다. 탁 트인 하늘과 바다를 보며 저만한 꿈을 키운 아이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폐교가 모교가 된 그들도 나처럼 문득 뒤를 돌아보다가 빛바랜 꿈을 꺼내 닦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기억의 첫 장이 있는 골목을 찾아 추억의 조각을 주워 마음의 책갈피에 간직할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밥보다 별을 많이 먹었다. 평상에 누워 따먹는 밤하늘의 별은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꿈이었다. 되살아난 골목을 걷는 사람들도 반짝이는 꿈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다들 학교는 졸업했지만, 인생학교는 걸음을 멈추는 날까지 재학 중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