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하전 포항시의회 의장
박문하
전 포항시의회 의장

한국 정치에서 YS와 DJ, 가요계의 나훈아와 남진, 바둑계의 조훈현과 서봉수, 사학 명문 연세대와 고려대, 중국 초한의 항우와 유방 등 익숙한 이름의 이들을 사람들은 영원한 라이벌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동서고금을 통해 누구나 예외 없이 수많은 라이벌들이 상대의 대척점에 머물면서 치열하게 대립하고 경쟁했던 과정을 지켜 보아왔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편에서 목표를 향해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숱한 라이벌들은 어떤 흔적과 교훈을 남겼을지 한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다.

라이벌(Rival)의 어원은 River(강)에서 나왔고 같은 강을 끼고 사는 이웃이라는 의미처럼 라이벌도 피해를 주는 것과 도움을 받는 것을 인정하고 성숙한 관계를 쌓아가야 한다는 뜻에서 라이벌이 어떤 관계인가 진정한 의미를 알 듯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라이벌의 대결은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을 것 같다. 서로 공존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아름다운 라이벌도 없지는 않지만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이 타도의 대상으로 반드시 끝장을 봐야 하는 증오와 분노의 라이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모택동과 장개석. 숙명의 두 라이벌이 시작한 중국의 내전은 800만명의 인민이 사망한 세계 최대의 재앙이었다. 그들에게는 화해와 타협이라는 단어는 아예 없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멸시와 반목으로 일관하였다. 수많은 라이벌 중에는 저주에 가까울 만큼 앙숙이었던 미국의 에런 버와 알렉산더 해밀턴이 있다. 두 사람은 1840년 미국의 역사를 뒤흔든 뉴저지주 위호겐의 권총결투에서 해밀턴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 유례없는 라이벌이었다.

이처럼 한 시대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꾸었고 역사의 항로를 변화시켰던 라이벌이 있는 반면에 서로를 존중하여 동행하고 있는 행복한 라이벌도 없지는 않다.

아름다운 라이벌의 대미는 빙상 500m 종목의 이상화와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가 보여주고 있다. 밴쿠버와 소치에서 이 종목 금메달을 목에 건 이상화는 마지막 평창에서 3연속 금메달 도전에 나섰지만 최대의 라이벌인 고다이라에게 패하며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라이벌 이상화가 직전의 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울분과 아픔으로 지켜보았을 고다이라는 평창에서 통쾌하게 설욕하며 우쭐할 만도 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라이벌 이상화가 트랙을 돌면서 눈물로 고별인사를 하고 있을 때 고다이라가 다가가 진한 포옹으로 아쉬움을 달래주었고 이 사진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타전되었다. 치열한 경쟁을 펼치면서도 상대를 격려해 주는 모습은 평창 올림픽 최고의 명장면으로 선정되었고 ‘한·일 우정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현장 주변에서나 격동의 역사 위에서 수많은 라이벌들을 만나고 그들이 던져 주는 물음표를 생각하며 살아간다. 분명한 것은 제로섬 게임처럼 이길 대상인 라이벌보다 서로 윈윈하며 본받을 대상의 롤모델을 라이벌로 설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라이벌이 있어 부담도 되지만 더 노력하고 집중하여 자기성장과 더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는 지혜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