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준KBS포항방송국장
박혁준
KBS포항방송국장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는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자연유산 및 인류무형문화유산과 더불어 세계기록유산을 등재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선정기준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해인사 장경판전’등 14건의 세계 문화·자연유산과 ‘판소리’ 등 21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 그리고 16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다른 유산들이 ‘Heritage’라고 표기되는 것과 달리 세계기록유산은 영문으로 ‘Memory of the World’인데, 용어 번역의 통일성 목적과 더불어 역사적 의미와 정신적 가치를 기록하고 기억하라는 함의를 추론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훈민정음 해례본’을 위시하여 독일의 ‘양피지에 인쇄된 구텐베르크 42행 성경’, 중국의 ‘갑골문’등이 세계사적 의미를 인정받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방송된 프로그램이 기록된 2만522건의 자료로 구성되어 있는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Finding Dispersed Families)’ 기록물이 그 보편적 가치를 평가받아 상기 유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등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방송을 통해 상봉한 이산가족이 1만 건이 넘는 등 국민들이 주시는 소중한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 한국방송이 아니라면 그 어느 매체도 할 수 없는 인류사적, 인도주의적 쾌거로 기억되고 있다.

KBS가 기록해온 켜켜이 쌓인 시간의 층위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산업화를 이끌어 온 포항의 여기저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장기면 장기유배문화체험촌에 가면 유배생활을 하며 회한의 시간을 보냈을 다산 정약용 등의 흔적을 볼 수 있고, 이러한 귀양살이의 모습은 KBS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에 생생히 재현되어 있다. 송도동에 위치한 운하관에는 다섯 개 섬마을이었던 수산업 전진기지 포항이 시민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으로 산업화의 선두에 서기까지의 시간이 기록되어 있고, 괴동동의 역사박물관에서는 제철보국(製鐵報國)의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세계적인 철강도시로 발돋움하는 포항시를 알리는 데에는 KBS의 역할이 컸는데, 1973년 포항제철 포항1기 준공을 계기로 줄곧 황금시간대 메인뉴스는 물론 대대적인 특집방송을 편성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표했고, 1974년에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던 드라마 ‘꽃피는 팔도강산’을 준공 1주년을 맞은 제철소 현장을 무대로 두 달간 제작·방송함으로써 막 도약하는 포항시의 철강산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애정을 증폭시켜 발전에 일조했다.

수산업 전진기지에서 철강도시로, 그리고 미래 신성장 산업도시로 변모 중인 포항시의 역사를 기록해온 KBS의 방대한 아카이브는 수신료의 가치에 대한 당연한 공적 책무를 이행해 온 결과이다. 맨손으로 땅을 간척하며 오늘의 포항을 만들어 온 시민들의 위대한 노력이 망각(忘却)의 여백(餘白)에 남아 그 보편적인 가치를 인정받아서 언젠가 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데 KBS의 영상자료가 그 초석이 되기를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