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러시안-룰렛(Russian roulette)은 회전식 연발 권총에 총알을 한 발만 넣고 총알의 위치를 알 수 없도록 탄창을 돌린 후 차례로 자기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끔찍한 자살 도박이다. ‘디어 헌터’라는 미국영화로 인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정직 2개월’ 징계로 귀결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마구잡이식 징계 소동이 끝내 러시안-룰렛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징계위원회의 결정에 윤 총장은 법정투쟁으로 맞서고 있고, 징계를 재가한 문재인 대통령도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추미애 장관을 앞세워 사달을 기획하고 관리한 청와대와 문 대통령의 야릇한 처세는 궁색하다. 나라의 최고지도자 국가경영술로는 초라하다는 비판이 난무한다.

변호사 출신 대통령과 판사 출신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소위 법률전문가 정치인들이 벌여온 지루한 패싸움 소동을 바라보는 국민은 ‘법은 상식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폄범한 진리마저도 헛갈리기 시작했다. ‘법 논리’를 빙자한 교졸하기 짝이 없는 궤변 공방은 실로 짜증스럽다. 이현령비현령식에다가 아전인수, 내로남불 방식의 논쟁들이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국가의 가장 건강한 민주적 의사결정 기관이어야 할 입법부가 ‘힘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천박한 밀림이 됐다는 현실이다. 민주주의를 형해화하는 입법독주는 말할 것도 없이, 말도 안 되는 누명으로 검찰총장을 꽁꽁 묶어놓고 벌이는 그들의 잔인한 모다깃매가 눈 뜨고 보아주기 어려울 지경이다. 윤 총장을 향해 “중세 군주 같다”는 비난을 퍼붓다가 “대통령에게 항명하고 있다”고 하는 종잡기 힘든 적반하장 언변들이 난무한다.

안민석 민주당 의원의 “우리 문 대통령은 사실은 아주 무서운 분”이라는 말은 실소를 부른다. 같은 당 홍익표 의원이 윤 총장을 향해 “찌질해 보일 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 찌질한 쪽은 어디일까. 도무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국회의원들 입에서 나올 말들이라고 믿어주기가 버겁다. 번갈아 나서서 윤석열에게 퍼붓는 온갖 저주와 모략성 발언들은 우리 입법부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넉넉히 대변한다.

어쨌거나 이제 국민의 이목은 윤 총장이 제기한 징계 결정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의 심판 결과에 쏠려있다. 정치가 자꾸만 사법기관 밑으로 기어드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만간 결정 날 가처분 신청의 심사결과에 따라서 정국은 또 한차례 요동칠 게 분명하다. 이제 윤석열의 문제는 이 나라가 진정한 법치의 국가인지 아닌지를 결정짓는 분기점으로 떠올라 버렸다. 문자 그대로 법치가 칼날 위에 떠밀려 올라선 형국이다. 상식적으로 말하면, 이 문제는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려는 검찰총장의 생목을 잘라내려고 하는 희대의 야만극이다. 이런 추악한 러시안-룰렛의 최종 희생자는 애꿎은 국민일 수밖에 없을 텐데, 어쩌다가 나라 꼴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나. 이 무참한 ‘법치 파괴’의 폐허를 누가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