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욱 시인
김현욱 시인

사람은 말로 배우고 말로 사귀고 말로 싸우고 말로 사는 존재다. 말과 관련된 속담이 많은 이유도 말의 무게 때문이다.

정약용의 ‘이담속찬’에 ‘혀 밑에 도끼가 있어 사람이 자신을 해치는 데 사용한다’는 속담이 전한다. 말이 재앙을 불러올 수 있음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말이 씨가 된다’라는 속담도 말조심하라는 뜻인데 조금 다르다. 평소 무심코 하던 말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으니 불길한 말, 안 좋은 말보다는 즐겁고 이로운 말을 많이 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람에게 한 개의 입과 두 개의 귀가 있는 것은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두 배 더 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귀 기울여 경청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의 사자성어 ‘이청득심(以聽得心)’이 좋은 예다. 친구 사이에도 자기 말만 하는 친구보다 잘 들어주는 친구가 인기가 많고 대접을 받는다. 그뿐이랴. 가족이나 친구 말을 잘 들으면 마음도 얻고 시도 얻을 수 있다. 말이 씨가 되는 게 아니라, 말이 시가 된다.

전동재의 ‘요섭이의 말’이라는 시가 그렇다. “걸어오는데/ 요섭이를 만났다// 요섭이가 갑자기/ 동재, 우리 반 김욱현 샘 좋지?/ 그 샘 누구?/ 우리 담임 샘!//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김현욱 샘? 이라고 말하니/ 요섭이가/ 아, 맞다. 하하하!// 요섭이는 샘 이름도 모른다.”// 네이버 카페 ‘시와 노는 교실’을 운영하며 아이들과 시를 쓴다. 2주에 한 번꼴로 시를 쓰는데, 아이들의 쓰고 싶은 마음을 북돋우기 위해 가장 애를 쓴다. “아파트에서 생긴 일”, “기억에 남는 말을 떠올려 시 쓰기”, “억울하면 시 쓰자!” 같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주제로 시작한다. 알맞은 마중시가 있으면 읽어주고 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기억에 남는 말을 떠올려 시 쓰기”를 할 때는 배한권의 ‘엄마의 런닝구’를 읽어준다. 엄마의 사투리 부분을 맛깔나게 읽으면 아이들이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반 아이들에게 낭송을 부탁하면 더 재미있게 읽는다. 시 쓸 분위기 조성에 안성맞춤이다.

매년 아이들과 “기억에 남는 말을 떠올려 시 쓰기”를 하는데 곧잘 재미있는 시가 나온다. 전동재의 시 ‘요섭이의 말’이 그렇다. 새 학년이 시작되고 두 달이 지났는데도 요섭이는 자기 담임 선생님의 이름을 거꾸로 알고 있다. 동재와 요섭이는 같이 학교에 오다가 요섭이가 김현욱 선생님을 김욱현 선생님이라고 하는 게 참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다. 아침에 동재가 말로 먼저 내게 그 얘기를 들려줬다. 나는 ‘옳다구나!’ 동재에게 다음에 시 쓸 때 그걸 써보라고 했다. 동재는 요섭이 말을 잘 듣고 나는 동재 말을 잘 들었다. 말이 시가 된 것이다.

우리는 말의 세상에 살고 있다.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 정치인이나 연예인 같은 공인들이 종종 말실수를 해서 구설에 오르는 것을 본다. 아이들의 세상에서 ‘말’은 시의 씨앗이다.

누군가의 말을 귀담아듣는 일은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잘 들으면 시가 생긴다. 말이 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