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충격적인 뉴스 하나가 전달되었다. 김기덕 영화감독이 라트비아에서 코로나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이제 나이 육십이라 하는데, 증세가 나타난 지 불과 며칠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나는 그의 영화 스타일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지만 ‘피에타’만큼은 이 ‘철공장’ 돈 세상에서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전통적 해법을 일신하여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가 ‘한갓’ 바이러스로 인해 갑자기 불귀의 객이 된 것이다.

코로나가 지금 하루 확진자 일천 명을 넘어선지 벌써 며칠 되었다. ‘K-방역’이 바야흐로 호된 시험대 위에 올랐고, 방역 단계를 올림으로써 가뜩이나 어려운 사람들 살림은 더욱 압박을 받게 됐다.

학교에서도 수시면접을 전후로 하여 이틀씩 학과가 있는 건물 출입을 완전히 차단한다고 하여 일이 바쁜데도 결국 오늘 학교에 갈 수 없는 상태다. 며칠 전에 학과 교수들끼리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몇 사람만 마스크를 끼고 만났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줌(Zoom)으로 참여했다. ‘문학의 오늘’ 잡지 편집기획 회의도 바로 어제 화상회의로 진행했고 곧이어 있었던 학교의 BK21 관련 회의도 비대면이었다. 학과장실 비품을 바꾸는 문제로 분당에서까지 손님이 오시는데, 그것도 날을 다시 고르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어제는 엄동설한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서울은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바이러스도 그러면 좋겠지만 이건 무슨 일인지 추울수록 감염이 더 쉬워진다고도 한다. 강력한 방역 대책에, 어떤 두려움으로 서울은 아홉시만 되어도 벌써 시골 마을처럼 조용하다.

이런 와중에도 정치는 위축되기는커녕 더욱 살아 난리가 난 듯하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경합주에서 주지사와 의회가 각각 따로 선거인단을 내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검찰총장 징계 문제에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이 둘 다 사람살이하고는 직접 관련 없는 듯도 한데,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표면상의 난리 밑에서는 코로나를 맞은 사람살이를 어디로 끌고 가야 하는가에 대한 첨예한 입장 대립이 꿈틀거리고 있다.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요즘처럼 자기를 지키는 일이 어려운 때도 없었다는 생각이다. 몸도 몸이지만 정신의 ‘나다움’을 지키는 일이 큰일이다. 정치라는 남의 말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는 사이에 세월은 화살처럼 흐른다.

모두들 안녕하시라. 무서운 염병에,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 어지러운 정치에 휘둘리지 말고 모두들 잘 견뎌 살아남으시라.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