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배한동 경북대 명예교수·정치학

지난해 2019년은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였다. 지난해에는 중앙 정부뿐 아니라 지자체도 독립운동 기념사업을 떠들썩하게 펼쳤다.

대부분 행사 위주로 끝나고 애국 독립지사들의 정신을 기리는 실질적인 현창사업은 여전히 부족했다. 사전 준비도 부족했고 시행착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당국의 역사 왜곡으로 초래된 한일 갈등의 고삐는 풀리지 않고 있다. 우리는 반일과 항일을 넘어 극일(克日)을 위해서 일제치하 애국지사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바르게 계승해야 한다. 우선 항일 투사들이 방치된 유물 유적부터 잘 보존해야 한다.

다행히 독립 운동가 전국 유일의 묘지인 신암선열 공원 승격 기념식에 참석한 바 있다. 일제 시 목숨을 바친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안식처가 이곳인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동대구역 북쪽, 버스로 두 정거장 거리에 국립선열공원이 있다. 대구에서 독립운동에 앞장선 선열들과 애국지사들이 나란히 잠들어 있는 곳이다. 대구 만세시위에 앞장선 김태련 부자가 앞뒤로 누워있고, 중국 광복군 출신 지사들과 항일 독립을 외치던 문인들도 같이 묻혀 있다. 이러한데도 정작 대구 시민들은 국립공원 묘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몇 해 전 독립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를 창설했다. 나는 이들과 함께 대구의 독립운동의 현장을 찾은 적이 있다. 대구는 의외로 여러 갈래의 항일운동의 중심이 된 지역임이 분명했다. 대구의 국채보상운동은 유네스코의 세계기록문화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대구 앞산 안일사는 1915년 조선 국권회복단 결성지이고, 달성 공원에서는 이 나라 최초의 항일 비밀 결사조직 광복회가 탄생했다. 대구의 3·1운동은 서문시장에서 출발해 연인원 2천여명이 넘는 군중이 참여했다. 대구 삼덕동 대구 형무소는 독립 운동가 156명이 억울하게 순국한 성지이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대구 사람은 점점 드물다.

지난해 대구의 독립 운동가들의 거사 장소와 생가를 찾은 적이 있다. 장진홍 의사가 분을 참지 못해 폭탄을 던진 장소에는 표지석 하나 없다. 달성 공원 광복회 창설지에도 안내판 하나 없다. 대구 항일운동 유공자의 생가는 대부분 방치되어 씁쓰레한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을미사변 후 최초의 의병장 문석봉, 광복군가의 작사 작곡가 달성군의 이현수, 독립운동을 하다 20세에 순국한 무태의 구찬회, 이육사의 고가마저 방치돼 있었다.

시인 상화의 형 이상정의 생가는 바보주막이라는 엉뚱한 영업 간판이 붙어 있었다. 하루 빨리 독립운동의 주요 활동 장소와 생가에는 표지석이라도 부착해야 한다.

후손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생가를 떠나고 애국지사들의 유물 유적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있다.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항일하면 3대가 망한다.’는 속설을 눈으로 확인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3·1 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대구시는 ‘3·1 운동 거리’와 망우공원의 ‘역사의 길’을 조성했다. 이러한 사업도 중요하지만 대구 독립 운동가들의 유물 유적이나 생가 보존 사업부터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