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계천에서 본 계정의 겨울.

아들과 산책을 나갔다. 동네 산책로는 마스크 낀 사람들로 늘 붐벼 차를 타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갔다. 김병례 작가는 산책을 책을 산 것으로 표현했다. 자신처럼 매일매일 나가는 것은 월간지를 구독하는 것이고, 나처럼 계절마다 찾아가는 것은 계간지를 읽는 것이라고 했다.

계간지 중에 오래된 책을 사러 나갔다. 이 동네를 들어서려면 먼저 은행나무 가로수를 지나고, 소나무가 솟을대문처럼 터널을 이룬 길을 지나야 나온다. 몇백 년의 세월을 지닌 아름드리 나무들이 성큼성큼 그늘을 만들어 준다. 마을의 오래된 역사를 정자나무가 책의 서문이 되어 알려준다. 여기가 이언적 선생이 살았던 마을이라고.

옥산서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세심대로 향했다. 포장하지 않은 흙길에 아들과 나의 발소리만 사박사박, 딱따구리 녀석이 머리 위에서 나무를 쪼아대고 있다. 카메라를 들이미니 포로록 다른 나무로 자리를 옮겨 버렸다. 길옆으로 자계천이 따라붙는다. 가뭄이라 그런지 수량이 더 줄어 졸졸 낮은 목소리를 낸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좀 더 커지는가 싶으면서 너럭바위가 펼쳐진다. 이곳을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닦는 곳이라고 세심대라 부른다. 이언적 선생이 사시는 동안 주변의 산과 계곡마다 이름을 붙였는데 사산오대(四山五臺)라 하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세심대이다. 읽은 책을 겹겹이 쌓아 놓은 듯한 책바위가 골짜기를 가득 채웠다. 바위에 이황 선생의 글씨로 ‘세심대’를 새겨넣었다. 그 옆으로 용추 폭포가 물소리를 증폭시킨다. 폭포 아래 용소를 건너는 외나무다리가 놓였다. 아들 손을 잡고 오래전 이 다리를 건너간 선생의 산책로를 따라 독락당으로 향했다.

동네 골목길을 지난다. 집집마다 주소를 세심로 00번지라 적혔다. 동네 이름도 세심마을이라고 명패를 달았다. 까치밥을 단 감나무와 봄을 미리 준비한 매화나무를 구경하다 보니 금방 독락당 주차장이 나타났다. 버스 주차장 앞에 가게 이름은 ‘자옥슈퍼’다. 자옥산에서 따온 듯하다. 산 이름도 이언적 선생이 붙인 것이다. 독락당의 백미는 계정에서 보는 경치다. ‘계정’이라는 명패는 한석봉 선생의 글씨다. 봄, 여름, 가을에 지인들과 올라앉아 마루에 앉아 한나절 이곳을 지나는 바람을 즐기고 책도 읽었다. 그래서 오늘은 자계천에서 계정 뒤로 지는 노을을 보려 한다. 자계천으로 내려섰다. 돌다리를 건너며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가라앉은 가을 나뭇잎 사이로 송사리가 분분히 노닌다. 그 위로 기와를 얹은 한옥이 까치발을 들어 물속에 모습을 비춰 매무새를 다듬는다. 물고기들이 계정에 올라 풍류를 즐긴다.

계정은 건물에 붙여 달아낸 누각이다. 바위의 모양이 들쑥날쑥하니 기둥의 길이도 제각각이다. 돌의 모양에 따라 나무기둥 밑을 깎아서 앉히는 그랭이 공법을 썼다. 살창을 내어 물소리와 계곡 풍경을 집안으로 들여놓은 선생의 기발함을 누각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건물이 냇물에 한 발 내딛고 있어 난간에서 내려다보면 물 위에 떠 있는 듯하다. 건너편 앞산도 한 걸음 더 가까워져 손에 닿을 거리다.

김순희수필가
김순희
수필가

자계천에서 바라보니 굴뚝과 아궁이는 계정 밖에 나와 있었다. 난간 밑 벽체에 제비집처럼 매달아 놓았다. 세상에 아궁이가 저런 곳에 달렸구나, 세상에 이런 굴뚝도 있구나. 한옥의 설계도는 대목수의 머릿속에만 있다더니 선조들의 상상력은 어디까지인지 계절마다 간간이 넘겨보는 산책자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한참을 물소리에 젖어서, 계정의 아늑함에 물들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들과 독락당 담장과 담장이 만든 골목을 걸었다. 비스듬히 누운 향나무가 매력적인 사진을 만드는 곳이다. 가만히 한 컷 찍다 보니 발아래 빨간 산수유 열매가 떨어져 있다. 담 안에서 키를 키운 산수유의 품이 담 밖으로까지 뻗었다. 오늘의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오래전 미리 발간한 이언적 선생의 고서적의 품이 참으로 넓다. 오후의 산책만으로 그 뜻을 다 헤아리기 힘들어 월마다 구독해 펼쳐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