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성 순

불은 솥바닥에 꿈틀댄다

잠에 풀어진 얼굴을 비비던 새벽

찹쌀이 허옇게 구불댄다

잘 말라 볼이 패인 대추

바람찬 세상의 모서리를

건너온 그녀들

오골계 배 속에 구겨 넣는다

공처럼 불룩한 배를 가르고 솥에 넣는다

쉭쉭 소리를 내는 솥에게 다가가 숨을 멈췄다

오골계의 울음소리가 주방을 휘 감는다

발가락을 버둥대며

꺾이고 웅크린 그녀

가벼워진다는 건 자기를 벗는 일

질긴 겉껍질을 버려야

속살이 나온다

태아처럼 동그랗게 웅크린 검은 몸을 해체한다

갈비뼈와 다리가 흩어져 찹쌀과 섞였다

솥뚜껑을 덮고 다시 끓인다

백숙을 끓이며 시인은, 가벼워진다는 건 자기를 벗는 일이라는 생의 중요한 덕목 하나를 생각하고 있다. 생이란 바람찬 모서리, 시련과 고통의 순간들을 수없이 건너오는 것이리라. 뜨거운 불 속에서 자기를 벗는 찹쌀도 대추도 오골계도 자기를 벗어던지며 비로소 깊은 맛의 백숙에 이른다는 것에서 우리 생의 나아가야할 바를 암시하고 있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