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진 은

고향집 잿더미 옆

담 구멍 숭숭 뚫린 변소

내 발밑에서 그들은 올라오고 있었다

발효 단지의 비탈을 한 놈이 떨어지면

다음 놈이 기어오르는 저 끔찍한 집요함에

제법 느긋이 신문을 보는 내 한 눈이 미끄러져 내려간다

저 뻘가의 자식들은

냄새가 무언지도 모른다

더욱 제가 옮긴다는 더러운 병명(病名)도

(….)

시인은 사소한 일상에서 인생의 소중한 가치 하나를 발견하고 있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파리의 애벌레인 구더기 생태에서 그것을 얻은 것이다. 날개를 달고 비상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미물을 보며 어려운 환경과 처지를 탓하며 쉽게 포기해버리는 우리네 삶의 태도를 경계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