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식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강영식
포항 하울교회담임목사

서양에서는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고 동양에서는 인생을 길을 가는 나그네로 비유한다. 이백은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은 백대의 과객이라”하면서 인생을 여행길에 비유했다. 동양적 사고에서 길은 단순히 교통수단을 말하지 않고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 할 마음가짐이나 행위를 의미한다.

길에는 바른 길로 지칭되는 큰 길과 바르지 않은 길로 지칭되는 갓 길이 있다. “군자대로행”이라는 말에서 대로는 바른 길을 의미한다. 어떤 길이 바른 길이고 어떤 길이 바르지 않은 길일까? 또 그 길을 누가 만들었을까?

루쉰은 “본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고 했다. 지금 내가 편히 가고 있는 길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누군가 돌과 바위를 치우고, 가시덤불을 헤치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만든 길이며, 그 거친 길을 뒤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다듬어 지고, 그 길을 여러 사람이 함께 감으로 넓어져 비로소 길이 된 것이다. 그렇게 생긴 길을 사람들은 제 길 인양 걷는다. 길이 손상 되었거나 불편하다고 여겨지면 왜 길을 보수하지 않고 만들지 않느냐고 불평한다. 만들어진 길을 가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모든 길은 누군가가 없던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것인데 이에 대해 고마움과 감사를 잊은 듯하다. 그렇게 보면 세상에는 만들어진 길을 가는 사람과 없던 길을 만드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없던 길을 만든 사람을 우리는 선구자라 하고 성인이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길들을 만들었지만 그 길이 가치를 상실하여 사람들이 그 길을 가지 않게 되고 그래서 대부분 소멸된다. 소수의 길만이 남아 지금도 사람들이 따르는 길이 된다.

길은 고전과도 같다. 고전은 지역과 시대를 불문하여 과거에 지닌 가치가 현재에도 남아 그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길이 고전과 같은 길일까? 그 길은 과거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영원토록 변치 않는 진리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죽임의 길이 아니라 우주만물에 생명을 공급하는 살림의 길이 되어야 한다.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다. 내가 가는 길은 지역과 시대를 초월하여 변함이 없는 진리의 길이고 우주만물에 생명을 공급하는 살 길이라는 것이다. 그 길을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갔기 때문에 오늘의 길이 되었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간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은 어떤 길일까?

나는 만들어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일까? 없던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일까? 나는 뭔가를 받기만 하는 수혜적 사람일까, 뭔가를 주려고 하는 호혜적 사람일까? 길은 만든 사람이 없이는 길이 있을 수가 없고, 그 길을 함께 가며 다듬은 사람이 없이는 길이 될 수 없다. 나는 누구에겐가 단 한번이라도 그 길을 만들어 주었거나 그 길이 되어 준 적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