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굴에서 내려다본 원당암과 건너편 해인사. 원당암은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41-23에 위치해 있다.

해인사의 중후한 품격은 변함이 없다. 열세 개의 해인사 부속 암자들까지 모여 있는 가야산, 매표소를 지나면서부터 불국토에 들어선 듯 무심(無心)이 된다. 사람들이 몰리는 해인사를 지나쳐 무생교 너머 외길 끝에 앉아 있는 암자로 향한다. 해인사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원당암(願堂庵)이다.

계곡 옆 푸른 이끼를 두른 거대한 바위는 인파당 스님의 자연석 사리탑이다. 백련암에 주석하던 인파당 스님은 살아생전 고매한 인품과 학문에 능하여 많은 분들로부터 무위자연의 도인이라 칭송받았다. 1846년 열반에 드시자 기대했던 사리가 나오지 않아 허탈감에 빠진 제자들이 나름의 견해들로 큰스님을 평하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 다비식이 있던 마당에 오색 빛이 나타나 사라지는 곳으로 따라와 보니 바위 위에 스님의 사리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제야 어리석은 분별심을 깨우쳐 주고 죽음 후에 자연으로 돌아가 바람처럼 묻히기를 원했던 스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바위 위에 구멍을 파서 스승의 사리를 모시게 된 것이다. 초겨울의 문턱에서도 굴하지 않는 푸른 이끼 때문일까. 바위는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진리를 찾아 정진하는 선승처럼 범상치 않아 보인다.

신라 애장왕 3년(802년), 부처님의 가호로 공주의 난치병이 낫게 되자, 순응과 이정 두 대사의 발원으로 해인사가 창건되었다. 당시 왕은 서라벌을 떠나 원당암에서 불사를 독려하면서 국정을 보았으며, 이로 인해 원당암을 ‘수도 서라벌의 북쪽에 위치한 궁궐’이라는 의미에서 북궁(北宮)이라 불렀다.

창건 당시에는 이곳의 산 모양이 봉황이 날아가는 모습을 한 비봉산(飛鳳山) 기슭에 위치해 봉서사(鳳棲寺)라 이름하였고 진성여왕 때부터 본격적인 신라 왕실의 원찰(願刹) 역할을 하여 원당암이라 불렀다. 또한 1887년 전후에는 원당정토사(願堂淨土寺)라 칭해 중창불사와 함께 염화만일회를 결사해 국난극복을 발원했다.

아름드리 팽나무와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전나무가 산문을 대신하고, 이내 크고 작은 전각들이 청정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린다. 묵언수행 하듯 서 있는 고목들이 암자의 규모와 역사를 말해 주는데 절은 조용하다. 묵직한 고요가 나를 긴장시킬 때, 까마귀 울음이 정적을 깨며 숲을 흔든다.

지혜의 칼을 찾는 집, 심검당(尋劍堂) 뒤쪽에 중심 전각인 듯한 보광전이 숨어서 기다린다. 고요 속에서 빛나는 아름다움이 보인다. 작은 법당의 꽃문살이 애써 쓸쓸함을 들키지 않으려 유난히 화려하다. 매화와 목단, 소나무, 학 들이 펼치는 무한 긍정의 세계는 추운 날이 와도 흔들림이 없으리라.

법당 안에는 목조 아미타 삼존불과 해인사에서 주석한 아홉 분의 고승진영이 모셔져 있다. 누군가 피워놓은 향이 법당 안을 경건하게 밝히고 나는 남편과 나란히 백팔 배를 시작한다. 향 내음이 게으름으로 괴로워하는 세포들을 깨운다.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살다간 선사들의 향기를 더듬는 동안 내 기도는 싸늘하게 식어가도 좋다.

보광전 앞을 지키는 보물 제 518호인 점판석 다층탑과 석등은 단아하면서 공예적 수법이 뛰어난다. 벼루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점판암을 화강암 위에 탑신으로 세운 다층석탑은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감로수 떨어지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석탑과 석등, 지난했던 시간들이 응축되어 빛난다.

미소굴이 있다는 안내판을 따라 계단을 오른다. ‘공부하다 죽어라’는 혜암 큰스님의 사자후가 죽비가 되어 내려친다. 평생을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와 하루 한 끼만 공양하며 용맹정진하신 큰스님의 서늘한 기운을 미소굴은 흐트러짐 없이 간직하고 있다.

비상하는 봉황의 모습으로 가야산의 정기를 받아들인다는 최고의 전망대 운봉교에 서자 법보종찰 해인사가 손닿을 듯 가깝다. 오랜 세월, 수많은 선지식들이 하나의 화두를 붙잡고 머물다 간 신성스러운 수행도량, 그 엄숙한 눈빛과 마주한다. 가야산을 감고 있는 상서로운 기운들이 잡힐 것만 같아 오래도록 자리를 뜰 수가 없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그런 나를 달마선원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생전에 큰스님이 재가불자들에게 참선을 가르치던 시민선방, 그 침묵 앞에서 나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지혜의 빛을 찾아 먼 길을 달려 왔을 사람들, 봄날이 오면 저 선방의 댓돌 위에 내 신발 한 켤레도 안부를 여쭐 수 있다면 좋겠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좀 더 뚜렷하게 보인다. 요즘 의도치 않게 당면하는 문제들과 우연히 만나지는 선지식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지 모른다. 아무리 힘들고 캄캄해도 변하지 않을, 그런 당신 내 안에 함께 하라고 이곳으로 이끈 이는 누구일까?

청량한 바람이 인다. ‘공부하라’는 거룩한 말씀 하나 품고 무생교를 건너는데 어떤 부부가 말을 걸어온다. “원당암에도 볼거리가 있던가요?” 선뜻 답을 할 수가 없다. 그들이 찾는 것은 무엇일까? 나란히 암자로 향하는 사람들, 그들의 돌아 나오는 발걸음에도 지혜의 등불 하나 켜질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