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가을과 겨울 사이, 형산강 둔치를 찾았다. 떠나가는 가을을 아쉬워 함인지, 다가오는 겨울을 반기는 것인지, 스쳐가는 바람 결에 핑크뮬리가 물결처럼 일렁이고 깃털 같은 억새가 긴 목을 뽑아 흔들리고 있었다. 수확의 늦가을은 미련으로 주위를 서성이고 저만치 초겨울은 주춤대며 손짓하니, 아직은 좀 더 누리고 즐기라는(?) 전갈처럼 여겨졌다. 포항운하관에서 송도 끝자락까지 1km 정도에 이르는 형산강 둔치의 풍경이다. 포항제철소와 해도동, 송도동 사이에서 강물인 듯 바다인 듯 유유히 흐르다가 멈추고 멈춘 듯 흐르는 형산강의 종착지, 그 너른 품새의 언저리에는 산책로와 지압로, 운동시설과 쉼터, 파크골프장과 테마 꽃밭, 자전거길 등이 곳곳에 조성돼 있다. 그곳에서 시민들은 강과 바다를 접하며 가벼운 운동과 소요를 즐기며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필자는 주로 강둑으로 이어진 자전거길을 때때로 두 바퀴로 달리며 스치듯 지나가곤 한다. 하지만 근자에는 보다 느긋하게 강변을 거닐다가 색다른 풍경에 사로잡혀 한동안 발길을 멈추게 됐다. 바람의 몸짓으로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풀밭과 하얗게 나부끼는 억새의 손짓을 본 것이다. 육중한 제철소 설비를 배경으로 강물과 억새, 연갈색 풀밭의 조화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정경이 아닐 수 없었다. 자연스레 발걸음이 닿아 풍경 속에 빠져 들었다.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전문

세상에 어여쁘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가까이에서 살피면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맡으며 자세히 느낄 수 있다. 멀리서 보니 억새처럼 여겨졌는데 가까이서 보니 억새도 갈대도 아닌 생소한 외래종 억새였다.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팜파스글라스(Pampas-grass)라 불리우는 멕시코억새는 여러해살이풀로, 팜파스는 중남미 초원지대를 가르킨다고 한다. 거기에 핑크뮬리 그라스라고 불리는 벼과의 외떡잎식물인 하느작거리는 풀과 깃털 같은 억새가 어울려 둔치의 수수하고 이국적인 풍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토종을 위협하는 외래종 식물이 일각에서는 유해하고 심각하다고들 한다. 70, 80년대 수산자원 조성용으로 들여온 베스 물고기나 황소개구리 등이 생태계를 교란하고 파괴한다고 해서 퇴치에 나서기도 했었다. 그러나 세상은 지구촌 한마당이라는 말처럼 소통과 왕래가 활발해진지 한참이나 됐다. 다문화나 다원화가 낯설지 않은 요즘이라 자연환경의 변모도 시류에 따라 조금씩 수반되는 것이리라 본다. 세상은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다. 자연의 생태계도 자세히 보면 순리와 질서 속에서 대순환 하듯이, 인간사회도 상생과 협력 속에 공존하고 공생하는 것이다. 배타적이고 이기적이기 보다는 이타심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서로 나누며 살아갈 때 세상은 더욱 밝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점차 추워지는 날씨와 코로나로 인해 난세 같은 연말이 다가오는 때, 이웃과 사회를 위해 나눔과 베풂으로 마음의 온기를 전해주면 어떨까? 주위를 눈여겨 살펴보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아직은 많다. 스산함이 더해가는 계절에 부디 안녕하고 무사하라고 강변의 억새와 핑크뮬리가 온몸으로 흔들어대며 손짓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