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유성운의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에 담긴 이야기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의 신위가 있는 도산서원. 유성운은 사료를 꼼꼼히 검토해 이황이 수십만 평의 땅을 가졌던 부자이기도 했다고 쓴다.

‘기자 유성운’을 처음 만난 건 13년 전 몽골 울란바토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동아일보에 막 입사한 신입이었던 그는 용모가 반듯했고 예의가 깍듯했다.

3박4일의 일정을 함께 하며 곁에서 지켜보니 취재에도 열심이었고, 문장도 탄탄했다. 이른바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두루 갖춘 청년. 역사를 전공했다는 유성운은 기자보단 학자, 또는 소장 연구자에 가까운 사람이란 인상기가 남았다.

그 주관적 판단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긴 그는 정치부에서 일하며 ‘유성운의 역사·정치’라는 글을 연재했다. 기존의 정치 기사에서는 볼 수 없던 파격이었다. 신문 구독자들의 관심도 높았다. 수십 편의 역사 관련 논문을 검토하고, 이를 21세기 한국 정치·사회 현실 속에 어색하지 않게 녹여내는 15년차 중견 기자로 성장한 것이다. 시간과 고민을 쏟아부어 쓴 글은 반드시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 그에겐 일종의 팬덤(Fandom)도 생겼다.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은 최근 출간된 유성운의 책이다. 앞서 말한 ‘유성운의 역사·정치’를 다시 다듬고 깎아 만들어낸 땀의 결과물.
 

‘유성운의 역사·정치’를 보완해 출간된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
‘유성운의 역사·정치’를 보완해 출간된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

▲흥미 유발하는 영남 유림의 이야기도 다수 담겨

책은 크게 5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고대인 삼국시대의 역사를 오늘날 현실 정치와 연결시키는 게 그 출발점. 이후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는 ‘국왕’ ‘사림(士林)’ ‘임진왜란’으로 세분해 각각의 역사에서 21세기 지금의 정치와 연계시킬 지점을 찾아내고 있다. 순서대로 읽어도 좋지만, 어떤 한 부분을 따로 읽는다 해도 독서의 흐름은 방해받지 않는다. 개별 원고마다 완결성을 갖추고 있어서다.

자유분방한 유성운의 문체는 ‘딱딱하고 재미없다고 오해받는 역사와 정치’에 부드럽게 칠해진 향기 좋은 윤활제가 되어준다.

유성운은 저자 서문을 통해 “책에 담긴 글들은 한국사를 전공한 정치부 기자의 공부 노트”라고 고백했다.

이 ‘공부 노트’의 가독성을 높여주는 건 출판사가 정성 들여 책 속에 넣은 수백 가지의 지도와 도표다. 그것들만 봐도 책의 대략적 지향과 핵심이 파악될 정도. 출판 과정에서의 수고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개인적인 느낌을 말한다면 ‘신라에 나타난 처용은 페르시아 왕자인가?’ ‘영조는 왜 10여 년이나 금주령에 집착했을까?’ ‘성리학의 거두 이황은 수십만 평 땅부자였다!’였다란 소제목이 붙은 글들이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기자가 생활하는 공간이 경상북도이기에 신라와 영남 유림의 큰 스승으로 불리는 퇴계 이황의 이야기에 관심이 갔고, ‘금주령을 엄격하게 지키려 했던 영조의 고집은 어디에서 연유했을까’란 의문은 주당으로서의 관심이었다.

이외에도 ‘김춘추와 금춘추, 왜 김씨 발음이 변했나?’ ‘왕건이 호남 차별을 정말 유훈으로 남겼나?’ ‘토지개혁 외친 건국 공신, 경기도 땅 20% 챙겼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조선이 망하지 않은 이유’ 등으로 명명된 챕터도 적지 않은 독자들이 무릎을 치며 읽을 듯하다.

공부하는 기자, 특정 분야에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춘 기자가 드문 시대다. 많은 기자들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오만 가지 사건을 따라가려면 그것만으로 지치고 시간이 없다”고 항변한다. 유성운은 이 항변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는 ‘드물고 귀한 기자’다.

 

“역사칼럼 쓰는 나… 김구라가 알아봐서 깜짝 놀랐어요”

인터뷰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의 저자 유성운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을 읽은 후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유성운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대면했다면 보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겠지만, ‘코로나19 사태’를 무시할 수 없었다. 해서 인터뷰는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진행됐다.
 

-역사와 현실 정치를 결합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책을 쓴 이유는.

▲마크 트웨인은 “과거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을지라도, 분명 그 운율은 반복된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역사를 배울 때는 크게 느낄 수 없었는데, 신문사 입사 후 정치부에서 일해보니 역사의 운율이 다시 반복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고려 시대 권문세족의 대토지 소유를 비난하며, 조선을 개창한 신진사대부들이 기득권으로 변모한 과정은 요즘 새로운 기득권으로 자리 잡은 586세력을 떠올리게 한다. 또 세계 최강대국 몽골을 상대로 극단적인 고립과 투쟁을 40여 년간 펼쳤던 고려의 상황은 현재 미국을 상대로 저항하는 북한과 비슷한 면이 있다. 서울에 집을 마련하느라 고군분투했던 18세기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 집값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시민들과 다르지 않다. 역사라는 학문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길잡이 역할이 아닐까?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고민을 나눠보고 싶었다.

-집필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는.

▲역사를 다시 공부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다. 2006년 대학을 졸업했는데, 이후 학문적 성과가 많이 쌓여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조선시대 토지 단위인 1결이 도대체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알 수 없었다. 생산량에 따라 정했기 때문에 토지 비옥도에 따라 1결의 크기가 달라졌다. 그런데 지금은 연구가 거듭되면서 몇몇 지역에선 대강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그에 따라 퇴계 이황이 경북 일대에 수십만 평의 토지를 가졌던 거부란 것도 알 수 있었다.

-‘유성운의 역사·정치’를 꽤 오래 연재했다. 기억에 남는 독자는.

▲기자 생활하면서 좋은 기사를 많이 썼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때는 별 반응이 없던 분들이 ‘역사·정치’에 반응을 보인 경우가 많았다. 검찰 간부, 교사, 해외 교포 등 의외의 분들이었다. SNS상에선 친구가 많이 늘었다. 대부분 중장년 남성이다. 기사가 여당에 비판적이었는데도 잘 읽었다며 전화를 준 여당 사람도 있다. 김구라 씨도 기억에 남는다. 지난 2월 만났는데 명함을 줬더니 “아, 그 중앙일보에 역사 칼럼 쓰시는 분이죠?”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독자들이 어떤 것에 포커스를 맞춰 책을 읽었으면 하는지.

▲갈등이 첨예화하고 선과 악의 이분법이 횡행하는 시대다. 그 갈등을 증폭시키는 기제 가운데 역사가 있기도 하다. 불행한 일이다. 과거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보여줬듯 역사를 지지층 결집과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광기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런 점에 대한 경계를 삼고자 정리한 원고들이 있다. 관심을 부탁한다. 더불어 우리의 시각으로만 남을 재단하면 우리 모습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그런 이유로 소위 ‘국뽕’이라는 것을 걷어내고 담백하게 한국의 과거를 보고자 했다. 세종이나 정조에 대해서도 평가가 후하지만은 않다. 실망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바라보는 오늘날 한국 정치는.

▲훈구파와 사림의 대결과 유사한 구도다. 훈구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한데 이들은 조선 건국세력이다. 성리학을 건국 이념으로 삼긴 했지만 매몰되진 않았다. 계급 이동의 사다리도 작동했고, 부(富)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후 나온 사림들은 이들을 손가락질 하면서 정통 성리학 사회로 탈바꿈시켜야 한다고 봤다. 그들이 사상투쟁에서 결국 승리했고,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 후기다. 먹고 사는 문제보다 이념이 중요하고, 상대를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매장하는 사회였다. 지금 그 2라운드가 벌어지고 있는 듯해 걱정스럽다.

-앞으로의 계획은.

▲기후 변화와 조선 사회의 변동을 엮어보는 작업을 꼭 해보고 싶다. 쉽지 않은 주제이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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