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경 림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도
마당에 피워놓은
모닥불은 훨훨 탄다
삼십년 전 신혼살림을 차렸던
깨끗하게 도배된 윗방
벽에는 산 위에서 찍은
시인의 사진
시인의 아내는 옛날로 돌아가
집 앞 둠벙에서
붉은 연꽃을 딴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옛 백제의 서러운 땅에
그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모닥불 옆에서 훨훨 타오르고 있는
몇 개의 굵고 붉은 낱말들이여
시인은 신동엽 시인의 옛집에서 느낀 정겹고 평화로우며 고요한 풍경을 일러주고 있다. 한 시대를 고뇌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치열하고 가멸찬 정신으로 시를 써서 세상을 향해 던지고 간 신동엽 시인을 추념하면서 그의 삶의 진액이 녹고 스며 있는 옛집에서 그가 세상을 향해 던진 굵고 붉은 낱말(예를 들면 시 ‘껍데기는 가라’)을 떠올리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