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하버드 대학교 한국학과에 재직하는 푸른 눈의 교수 말이 가끔 떠오른다. 하버드 한국학과 학생들의 시조 생산량이 한국의 모든 시조 시인의 생산량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시조를 짓는 일은 학생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어휘 운용능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단시조(평시조)는 3장 6구 45자 내외의 정형화된 형식을 가진다. 단시조의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다소 길어진 형식이 장시조(사설시조)다.

현대시조로 오면 이런 틀이 작동하지 않는다. 1968년 발표된 이호우의 ‘개화’ 같은 작품이 좋은 본보기다. 이런 방식으로 문학 장르는 탄생과 변화-발전 및 쇠퇴와 소멸을 거듭한다. 세상만사 모든 것은 태어남과 사멸을 운명으로 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북아 세 나라의 정형화된 시가형식은 각기 다른 양상을 가진다. 5언절구(고시)나 7언절구(고시)의 한시(漢詩)와 우리의 시조, 그리고 일본의 하이쿠(俳句)를 비교해보는 일도 흥미롭다.

고려 후기에서 조선전기에 형식이 마련된 시조는 적어도 600년의 역사를 가진다. 일본의 하이쿠는 마쓰오 바쇼(1644∼1694)가 기틀을 세웠으니, 350년 정도의 연륜을 가진다. 5-7-5 17음절을 바탕으로 창작되는 하이쿠에는 계절을 나타내는 어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예컨대 “두견새 운다 지금은 시인이 없는 세상”이라는 바쇼의 하이쿠에서 우리는 봄이라는 계절을 읽는다, 두견새(접동새, 자규)가 주로 우는 시절이 5-6월 봄철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하이쿠를 짓는 사람은 적어도 700만 이상이다. 세계적으로도 하이쿠는 널리 알려진 단시(短詩) 형식이다. 예전에는 하버드에서도 하이쿠를 많이 가르쳤는데, 요새는 한류의 영향으로 시조를 배우는 학생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시조의 본고장인 한국에서 시조를 즐겨 쓰는 사람들 숫자는 많지 않다. 시조를 쓰는 일이 대단히 어렵거나 불가능한 작업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 생각한다.

시를 짓는 일은 나와 자연과 인연과 시공간을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삶이 맞닥뜨린 지금과 여기를 생각하며, 주변의 자연과 관계와 인생 전반을 통찰하는 행위가 시를 짓는 일과 결부된다. 제한된 시공간에서 아웅다웅하면서 살아가는 눈물겨운 일상의 연속선에 인생은 자리한다. 그런 장구한 세월이나 한 대목이 툭, 소리 내며 끊어지는 관계와 사건을 맑은 눈으로 들여다보는 일이 시를 창작하는 행위에 내포돼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세상 사는 일이 만만찮고 번거로우며 고달픈 시점에는 이런 작업이 여타의 수동적인 행위보다 유용하다.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텔레비전의 수용자가 되는 일보다 연필 한 자루 들고, 종이에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정갈하게 표출하는 행위는 내면의 평정하고 안온한 세계와 만나게 한다. 번다한 일상의 소용돌이를 잠시 피해서 자신의 세계로 침잠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나 한때는 시인이었고, 누구라도 시인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오늘 밤에는 하늘의 별과 달을 올려다보며 시상(詩想)에 문득 젖어보는 일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