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정치꾼은 다음 선거만 생각하고, 정치인은 나라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말이 참이라면 지금 이 나라는 절망적이다. ‘가덕도 신공항’ 악성 분열 바이러스가 시나브로 대한민국 민심을 강타하고 있다. 그게 아니라도 갈피를 통 못 잡는 제1야당 국민의힘 영남 권역은 남북으로 확실히 쪼개지고 있다.

정부 여당의 ‘김해신공항 백지화-가덕도 신공항 추진’ 이야기는 어제오늘 등장한 주제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은 처음부터 시나리오를 짜놓고 다 결정된 김해신공항 건설을 미적거리며 물밑작업을 해왔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선거를 ‘가덕도 선거’로 몰고 가서 큰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나서는 곤란한 처지의 국토교통부를 배제하고 국무총리실에 악역을 맡겼다.

국무총리실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는 ‘근본적인 검토’라는 알쏭달쏭한 여섯 글자를 검증결과라고 내놓았다. 결과발표가 나기도 훨씬 전에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부산에 가서 “더 이상 희망 고문을 하지 않겠다”는 수상한 말을 했고, 국토교통부 차관은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로부터 ‘가덕도 신공항 검토 용역비’ 문제로 쌍욕을 얻어먹었다.

검증결과 발표가 나던 날은 아침나절부터 국회 정론관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의 ‘가덕도 신공항’지지 선언 릴레이가 벌어졌다. 검증위원회 김수삼 위원장은 뒤늦게 “김해공항 백지화라는 건 한 번도 생각 안 했다”는데 정치권은 ‘가덕도 신공항’ 합창부터 부르고 있으니 다들 제정신인가 모를 일이다.

결론 다 정해놓은 다음 알량한 ‘위원회’를 만들어서 정당성을 조작하는 협잡질은 비단 이 정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역대 정권들이 다 그렇게 ‘승자독식’의 덫을 민주적 절차로 위장해서 써먹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김해신공항 검증위원들도 검증결과를 ‘백지화’가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검증 과정부터 샅샅이 뒤져보는 게 순서다.

‘가덕도 신공항’과 관련한 비판 중에서 가장 정확한 것은 권영진 대구시장이 내놓은 “부산의 정치권 몇몇하고 부동산업자하고 건설업자 카르텔이 이어져 부산시민들도 속이고 영남권 전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는 분석이 가장 정확하다. 4년 전에 끝난 육상경기에서 꼴등을 한 선수를 이상한 수작질로 갑자기 1등으로 바꾸는 건 우리 젊은이들이 기겁하는 ‘불공정(不公正)’의 문제이기도 하다.

벌써 조국 전 장관은 ‘가덕도 신공항’ 작명에 들어가서 ‘노무현 공항’으로 하자고 초를 치고 있다는데, 8년 전에 “신공항 10조면 고교 무상 교육 10년이 가능하다”며 반대했던 SNS 글이 소환되며 또 한판 웃음거리가 됐다. 아무래도 조 전 장관은 일구이언(一口二言) 기록으로 머지않아 기네스북에 오르게 생겼다. 그나 마나, 검증위의 발표조차ㅁ 수상쩍은 판에 빛의 속도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안’을 제출한 부산지역 국민의힘 의원들을 어찌해야 하나. ‘정치꾼’ 말고 어디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곤 이 나라에 정녕 한 명도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