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대수필가
윤영대
수필가

지난 일요일 산행을 하려다 산불경계령으로 입산금지됐다는 귀띔에 발길을 돌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을 갔더니 마침 포항시 랜선 걷기축제가 진행되고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2코스를 같이했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2017년 개통된 25km 해안길로 네 코스로 나뉜다. 이 둘레길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도록 바다 위로 데크로드가 만들어져 있고 자연경관을 훼손치 않고 그곳 지형지물인 백사장과 몽돌밭, 갯바위 등을 이용해 다양하다. 임곡, 입암, 마산, 흥환, 발산, 대동배를 지나며 작은 포구의 삶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

1코스의 임곡리에 들어서니 낮은 방파제와 담벽에 그려진 연오랑세오녀의 전설이 길게 이어져 이야기를 보여 준다. 작은 항구를 지나 청룡회관을 올려다보며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으로 올라갔다. 포항시 마스코트 ‘연오와 세오’가 반갑게 맞이하기에 같이 사진 한 장 찍고 축제 기분을 냈다.

2코스 ‘선바우길’ 시작점인 일월대 앞에서 ‘360도 회전 영상촬영’도 체험하고 조릿대 군락지를 지나 입암항에 내려서니 멸치 말리는 냄새가 코끝에 살랑댄다. 마을 끝에 우뚝 선 선바우 앞에서 둘레길이 본격 시작된다. 네 코스 중 데크가 가장 길게 놓여있는 길이며, 조용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물 위를 걷듯 걸으면 연보라색 해국이 피어있는 형형색색 바위들이 신기한 해안의 모습을 보여 준다. 남근바위, 폭포바위, 여왕바위, 소원바위는 자연의 조각품이고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도 새겨 놓았다. 킹콩바위는 갯가에 앉았다. 하얀 바위벽 힌디기를 지나 하선대에 서면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파란 바다가 멀리 포항제철의 영일만 신화를 들려주듯 찰랑인다. 몇 번 걸어 봤지만 그때마다 감탄하는 둘레길이다. 몽돌 길을 걸어 먹바위를 지나 마산리 쉼터에서 막걸리도 한잔했다. 작은 항구엔 엄마아빠를 따라온 아이들도 낚시를 드리우고 건너 방파제엔 텐트도 즐비하다. 비문바위 지나 예쁜 아치형 데크 위에서 미인바위를 보고 전망대도 올라보고 흥환리 해수욕장에 들어서니 캠핑을 하는 부부와 연인들이 행복해 보인다.

3코스는 ‘구룡소길’. 발산리와 대동배를 지나는 이 산책로에는 데크는 별로 없으나 바닷물에 발 적시듯 호젓이 걷는 맛이 좋다. 장기목장성비를 보고 바닷가를 한참 따라가다 보면 장군바위가 위엄있게 서 있다. 다시 발산리 항을 지나 자갈길을 가다가 계단을 올라가면 봄에는 모감주나무와 병아리꽃나무를 볼 수 있는 숲길로 이어진다. 좁은 산길이 끝나는 전망대에서 비밀에 싸인듯한 구룡소를 내려다보고 대동배까지 걷는다. 이따금 국도로도 걸어야 된다.

다음날 늦게 4코스 ‘호미길’을 돌았다. 까꾸리개 언덕 길에는 서상문 시비와 호미숲 해맞이터 기념비가 있고 독수리바위는 일본실습선 조난비를 염려하듯 날아오를 듯하다. 바다새들의 배설물이 하얗게 덮인 대보항 방파제 따라 갈매기 떼 울음소리 요란한 해변 길 돌며 호미곶등대 소나무숲 속 이육사 청포도 시비와 영일노래비를 읽노라면 어느덧 ‘상생의 손’이 반긴다.

해안둘레길이 끝나는 호미곶해맞이광장에 서서 새천년기념관 뒤로 붉게 물든 해넘이를 향해 두 손 모아 나라의 안녕을 빌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