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북해도(北海道). 허연의 시와 산문에 잘 어울리는 풍광이다.

“눈 한 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생이 저물었구나”라고 탄식한 철학자가 있었다. 그만큼 세월은 빠르다. 떠들썩하게 시작된 2020년이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스산한 바람 속에서 어깨 움츠릴 겨울이 코앞이다. 쓸쓸한 날엔 그 쓸쓸함을 억지로 숨길 필요가 없다. 쓸쓸함을 즐기며 한껏 고독해지는 것도 겨울을 이기는 좋은 방법. 여기 막막하고 외로운 계절을 함께 걸어줄 좋은 친구가 있다. 바로 시인 허연의 시집과 산문집이다.

 

허연의 산문집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
허연의 산문집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

▲책과 함께 살아온 사내의 고백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

오래전이 아니다. 20세기엔 ‘발군(拔群)’이라 불러도 좋을 문학기자들이 있었다. 김훈, 이경철, 정철훈, 조용호, 최재봉….

빼어난 감각과 문장을 가진 그들은 각기 다른 신문사에서 자신이 속한 매체의 품격을 높여준 기자들. 또한 그들 대부분은 소설가나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매일경제’에서 오랜 기간 기자로 일하고 있는 허연 또한 ‘발군의 문학기자’에 당연지사 속하는 사람이다. 시인으로서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20여 년 전부터 기자 선배인 허연을 가끔 만나곤 했다. 주로 문학기자를 대상으로 하는 모임이나 문인들의 행사장에서였다. 해사한 얼굴에 긴 손가락을 가진 그는 보기 드문 ‘독특한 사내’였다.

목소리 톤은 한없이 낮았고, 쉬이 웃거나 찡그리지 않았으며, 가끔씩 흐려지던 눈망울은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의 ‘너머’를 보고 있었다.

그가 1991년 등단해 ‘불온한 검은 피’라는 시집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야 허연의 얼굴 속 침잠과 우수를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속화된 자본주의가 득세한 한국. 통속한 기자이면서 탈속을 지향하는 시인의 역할까지 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만한 고통과 번뇌를 배후에 깔아야 가능한 것일까? 굳이 묻지 않아도 세상으로부터 허연이 받았으며, 받고 있고, 앞으로도 받아야 할 상처의 깊이가 짐작 가능했다.

허연의 산문집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는 문학기자를 하며 접한 수많은 책 중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들을 선별해 감상을 기록한 성과물. 그러니 ‘책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한 사내의 이야기’쯤으로 불러도 좋겠다. ‘비블리오필리(Bibliophily)’는 책에 독립된 성격을 부여해 이를 감상하고 수집하는 취미를 지칭하는 단어. 서문엔 허연의 고백이 담겼다. 이런 것이다.

“모범생이 아니었던 10대 시절. 교실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정독도서관에 가서 소설책을 읽는 게 더 행복했다. 당연히 앞날은 어두웠다. 고등학교 3학년 겨울. 집안에 처박혀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책들까지 모조리 읽었다. 그때 아주 놀라운 깨달음이 다가왔다. 세상이 두려운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책이 준 힘이었다.”

미래에 짓눌린 불안감과 자신에 대한 혐오에 시달리던 10대를 ‘독서’를 통해 극복해낸 허연의 ‘책 편력’은 이후 30년 넘게 이어졌고, 지금도 여전하다. 그런 까닭에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는 시인 허연의 자기 고백으로도 읽힌다.

‘공산당 선언’과 ‘유교 아시아의 힘’에서부터 ‘목수 아버지’와 ‘단순한 열정’까지. 허연이 소개하는 166권의 책은 프리즘이 넓다. 특정 장르와 저자에 구애됨이 없이 그야말로 ‘자유롭게’ 책을 골라 주관적으로 감상하고 분석하는 글쓰기.

 

허연의 시집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허연의 시집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여기에 명료하고도 적확한 허연 특유의 문장과 깊이 있는 세계인식을 맛보는 재미가 각별하다. 다음의 문장들을 보라.

“아나키즘을 이루지 못할 꿈 정도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꿈이라 부르지 마라. 세상에 꿈이 아닌 사상이 있었던가. 왕조 시대에 공화제를 꿈꾼 것도 당시로서는 꿈이었다.”

“낚시에서 고기를 잡고 못 잡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내가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흐르는 물을 잠자코 지켜봤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책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고, “책이 있어 세상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경지에까지 다다른 허연은 헤럴드 블룸(Harold Bloom)을 인용해 이런 말을 들려준다.

“독서는 우리가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세속적 초월이다.”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를 읽은 소설가 조정래는 “기사든, 산문이든, 시든 그의 글에는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다름 아닌 예리함과 고집,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부록으로 묶인 ‘독서 방법’과 ‘본문 안의 책들’ ‘더 읽을 만한 책들’은 친절하기까지 한 허연이 독자들에게 선물하는 효율적인 독서를 위한 항해도(航海圖)다.
 

▲스타일의 내면화 이룬 시집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의 소설 ‘설국’이 준 정서적 충격에 시달렸던 청년 허연이 지천명(知天命)을 훌쩍 넘겼다.

앞서 언급한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를 필두로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 ‘오십 미터’ 등의 책을 꾸준히 내놓았던 그가 최근 다른 어떤 시인도 흉내 낼 수 없는 스타일을 내면화하며 새 시집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를 상재했다.

그의 오랜 문우(文友)인 박형준은 ‘이곳에선 모든 미래가 푸른빛으로 행진하길’이란 제목의 발문을 통해 ‘허연의 시와 됨됨이’를 이렇게 진단한다.

“허연 시에 대한 첫인상은 담백하고 슬픈 기운이었다.…(중략) 맑으면서도 예술가적 비애가 서려 있었다. 무엇보다도 쓸데없는 과장이나 수식이 없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중략) 주머니에 유리구슬을 가지고 있는 소년. 허연에게 시란 슬프고 더러워서 오히려 푸른 유리구슬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이었을 것이다.”

 

얼굴에 감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 시인 허연.
얼굴에 감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 시인 허연.

인간이 세계와 사물을 보는 눈은 크게는 비슷하고, 세부적으론 다르다. 기자 역시 박형준과 마찬가지로 허연의 새 시집에서 여전한 ‘슬픈 기운’과 ‘수식 없는’ 담담함을 찾아냈다. 이는 이전 시집에서도 익숙하게 보아온 것들.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를 통해 만나게 되는 허연의 작품들은 일가(一家)를 이룬 예술가의 절창에 보다 가까워져 있었다. 무르익은 스타일이 자신의 몸속으로 내면화되고 있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시인 스스로는 “소식은 없었다. 밤에 생긴 상처는 오래 사라지지 않는다. 도망치지 못했다”며 특유의 시니컬함으로 자신과 자신의 시를 낮추지만, 그건 말 그대로 겸양이다. 짤막하게 인용하는 아래 노래들의 품격이 어떤지 한 번 볼까.

야근조의 눈에 반사된 십자가

숯이 되어버린 길 잃은 양들

버스를 가득 채운 근심스러운 성자들

-‘세상의 액면’ 중에서.

슬픔은 위엄이다…

담장 안쪽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무반주’ 중에서.

새는 덩치는 커졌지만 눈은 슬퍼졌다

우리도 따라서 슬퍼지기 시작했다…

새가 죽던 날

취학 통지서가 배달됐다

-‘경원선 부고’ 중에서.

다시 우울과 막막함으로 은유되는 겨울이 왔다. 이 겨울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모피 코트나 두꺼운 패딩만으론 차가운 바람과 추위를 온전하게 막아내기 힘들 터.

허연의 문장과 노래엔 겨울에 저항할 힘이 담겼다. 그걸 찾아내는 건 오롯이 독자의 즐거움이다. 게다가 시집과 산문집은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모피 코트처럼 비싸지도 않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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