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

“일본국 정부는 한국과 다른 나라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수할 임무가 있으며, 한국 정부는 오늘 이후 일본국 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는 국제적 성질을 가진 어떤 조약이나 약속도 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위 문장은 을사늑약 중 두 번째 조항을 현대식 표현으로 풀어 쓴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15년 전인 1905년 11월 17일, 일제의 강압에 의해 대한제국의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 제국의 주한 공사 하야시 곤스케는 조약을 맺는다.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은 이 조약의 이름을 한일협상조약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을사년(乙巳年)에 체결됐다고 해서 을사조약 또는 을사협약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보호’하는 조약이라고 하여 한때는 을사보호조약으로도 불렸다. 다섯 가지의 불평등한 조약임을 강조해 을사년의 굴레가 되는 약속이라는 뜻으로 을사늑약(乙巳勒約)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우리의 자주적인 외교권 박탈, 일본인 통감 정치 실시, 일본의 대한제국 보호국화가 조약의 주내용이다. 외국과의 모든 조약을 맺을 때에 일본 정부의 손을 거치라 하고 통감을 두어 외교사항을 관리하겠다고 하는 것은 주권을 가진 국가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 조약은 강제로 체결됐다. 조약의 서명자인 우리 외부대신과 일본 공사의 전권 위임장도 없었고, 고종황제의 비준도 받지 못했다. 따라서 불평등, 부당함을 떠나서 조약 자체가 불법한 것이었다고 한다. 형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불법적 조약의 체결에 찬성했던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부대신 권중현의 다섯 명을 우리는 을사오적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을 단죄하고 조약의 불법성을 쟁론할 시간도 없이 5년 뒤인 1910년에는 경술국치를 맞고 국권을 완전히 잃고 만다. 조선의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 연호를 광무(光武)로 정하고 첫 황제에 즉위한 것이 1897년 10월 12일이었다. 세워진 지 8년도 지나지 않아 외교권을 빼앗긴 나라가 대한제국이다. 애써 ‘황제의 나라’라고 이름 붙이고 황제의 자리를 만들어 앉는다고 나라가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칭제를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10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정도면 유명무실을 넘어서 허상의 제국이었던 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 하나. 을사늑약의 조문을 보면 대한제국이라는 공식 이름을 쓰지 않고 한국(韓國)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지칭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일본은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한국이라는 이름이 소중하고 자랑스럽다. 한자 ‘韓’으로 쓰였지만, ‘한글’의 ‘한’과 같이 ‘큰, 바른, 하나의’ 나라가 한국 아니런가.

이제 다시 우리는 대한민국, 한국의 이름으로 서 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방역 선진국으로 세계 속에 그 위상을 떨치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오늘, 부끄러운 을사늑약 체결일에 허상의 제국 한국이 아닌, 21세기 세계를 이끌어갈 당당한 한국을 그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