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이점찬 대구미술협회장

눈처럼 희고 맑은 설백자와 함께 삶을 살아온 이점찬 대구미술협회장.

설백자!

설백자의 청아한 살빛에 달이 비친다. 눈처럼 희고 맑아서 설백자인가. 달을 닮은 둥근 선, 백자기의 완만한 곡선과 흰 눈빛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옛 어른들이 달을 보며 마음의 혼탁함을 걷어냈던 것처럼 설백자는 그 존재감만으로도 바라보는 이의 가슴에 이는 풍파를 재우기에 충분하다. 설백자에 담긴 창백한 매화, 살얼음 낀 연못의 잉어. 눈 위에 길고 처연한 목을 드리운 연밥 같은 그림이 백자의 흰빛을 더 빛나게 한다. 흰 빛을 가진 물체가 어디 달 뿐인가. 아기의 배내옷에서 맑은 한지, 흰 우유, 사람의 흰 눈자위, 하얀 달빛, 푸른 기운을 띤 해질녘의 청백색 이내까지, 많고 많은 흰빛 중에서 유독 겨울 눈송이의 흰 속살을 도자기에 담는 사람이 있다.

 

고향 구미 선산서 조대흙으로 놀던 소년, 20년 넘도록 백자 굽는 도예가 외길로

지난해 백자 가치 재해석한 공로로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재단 초대작가상 수상

청송백자 원형·가치 복원에도 온 힘 ‘경북도 문화상' 조형예술 부문 포상 영예도

“조선 500년동안 끊이지 않고 계승된 한문화는 백자 뿐… 시대에 맞게 변화 시도”

지난해 5월에 백자의 맑고 고귀한 가치를 재해석한 공로로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재단의 초대작가상을 받은 경일대 이점찬 교수(대구미술협회장)를 만났다. 유순한 눈빛과 순연한 미소에 희디 흰 흙내가 묻어 있다. 노벨재단이 후원한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 기념 특별초대전’에서 이 교수는 500여 년간 이어져 온 조선시대 백자의 전통적 아름다움과 여백, 절제의 미를 계승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또 올해 10월에는 ‘고만경 후원회’ 회장직을 수행하며, 자칫 역사의 어둠에 묻힐 위기에 처한 청송백자의 원형과 가치를 복원하는데 전심전력을 기울였고, 지역 도자기 예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공로로 ‘2020년 경상북도 문화상’ 조형예술부문의 포상을 받으셨다. 20년이 넘도록 도예가의 외길을 묵묵히 걸어온 공로와 실력을 한꺼번에 인정받았으니 그 기쁨을 어디에 비유하랴. 포상이 마냥 좋기만 하겠냐마는 ‘그 동안 수고했다’는 다독임이어서 그 의미가 더욱 크고 깊을 것 같다.

수성못이 보이는 12층 라운지로 교수님을 모셨으면 기사를 쓰기 위한 질문을 해야 하는데, 도자기를 모르니 뭐라고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 질문은 답변에 대한 답변까지 준비되어 있는 순간이어야 가능한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선생님께서 도자기를 구우며 느낀 감정이나 에피소드, 그 일에 생을 바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알아서 차근차근 들려달라고 말하고 싶다. 차라리 도자기를 ‘소설’이라는 수식어로 바꿔서 얘기해보면 어떨까. 소설을 언제, 어떤 계기로 쓰기 시작하셨어요? 소설에 어떤 얘기를 담고 싶으세요? 혹시 소설의 소재를 구하러 외국까지 답사여행을 다니기도 하세요? 여러 나라를 다녀본 중에 어느 나라의 소설이 가장 인상 깊고 마음에 드셨어요? 신기하게도 도자기를 소설로 바꾸어도 질문에 전혀 그르침이 없다.

“도자기를 하시게 된 동기가 뭐예요?”

“구미 선산이 고향인데 우리 논 옆에 굴이 하나 있었어요. 굴 전체가 조대흙이었는데 거기서 흙을 만지고 노는 동안 자연스럽게 흙과 친해졌어요.”

조대흙으로 탱크를 만들고, 사람을 만들고, 구슬을 만들던 아이가 백토로 눈꽃송이처럼 희고 맑은 설백자를 굽는 도자기 장인이 되었다. 흙을 굽고 살라는 자연의 계시이고 선물이었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 선호하시는 도자기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주로 백자를 만듭니다.”

조선 500년 동안 끊이지 않고 계승 발전되어온 한문화는 백자뿐이라고 설명해주신다. 지금도 백자를 만들며 우리 시대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고. 초가집에서 아파트로 주택문화가 바뀌는 것처럼 시대에 맞는 미감도 그 문화에 맞게 바뀌어가고, 도자기 역시 모양과 장식, 채색을 달리하며 변화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그 아름다움이 실현된다고 귀띔해주신다. 둥근 달을 날마다 볼 수 없으니 집안에 달 항아리를 올려두면 한 번씩 껴안기도 하고 소원을 빌 수도 있다는 말에 공감했다.

“달 항아리는 채색을 하지 않고 비워두는 것이 더 아름다울까요?”

“채색이 오히려 백자의 흰빛을 강조하는 극적인 대비 효과를 줍니다.”

비워두기보다 그림을 그려 넣음으로써 달 항아리의 흰색을 더 강조하는 효과를 나타낸다는 말이 매우 인상 깊게 들렸다. 나무, 꽃, 새, 붕어의 전체를 그릴 수도 있고 형체만 그릴 수도 있다고. 마음에 흡족한 작품을 만들어냈느냐고 물으니 웃으시며, 전시가 끝나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집으로 가져와서 바라본다고 하신다. 다른 예술은 시간이 가면 어떻게든 완성이 되지만, 도자기는 마지막까지 지엄한 불의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끝까지 마음을 놓지 못한다며, 1천300도의 고온이 가져다주는 혹독함을 견뎌야 비로소 예술품으로 탄생을 한다는 말이 매우 비장하게 들린다.

 

“유럽이 채우는 문화라면

동양은 비우는 문화죠.

가장 완벽하게 비운 것이

바로 달 항아리 입니다 .

흰색은,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반면에 뭔가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충동을

받을 수도 있는 색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멈추는 것’이랍니다”

자료를 찾아본 바에 의하면 백자도 종류가 다양하다. 백자를 무광만 쓰는 게 아녀서 안료의 빛깔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코발트빛의 청화백자, 흑갈회빛이 생생한 철화백자, 산화구리의 적갈색을 담은 진사백자, 눈빛처럼 차갑게 빛나는 순백자 등, 다양한 백자 중에서 이 교수는 흰색을 사랑하는 백의민족의 얼을 담은 설백자를 즐겨 굽는다. 집안 장식장에 달 항아리를 올려두고 매일 아침 두 팔을 벌려 한 아름 안아준다는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깎아지른 차가운 달의 곡선에 이마를 대고 있으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이 교수에게 달 항아리는 어떤 의미일까. 풍요로움? 어쩐지 백자기의 둥근 선이 가을 들판을 가득 채운 풍요로움 같기도 하고, 만삭에 이른 여인의 둥근 배와 같은 존엄성과 여유로움 같기도 한다. 돌을 갈아서 만든다는 백토가 물과 불이라는 극단적인 재료를 만나 아름다운 달 항아리로 환생한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는 달이 여럿이었다. 대추나무 우듬지로 가볍게 솟아오르는 보름달과 안방 장식장에서 자태를 뽐내는 달 항아리, 장독대의 정화수(井華水)에 뜬 달까지, 같은 듯 다른 얼굴을 한 달이 그렇게 여럿이었다.

설백자는 단순한 사물의 의미를 넘어서서, 유난히 흰색을 사랑하는 우리 민족의 얼과 기원을 담고 있어서 더 귀하다. 옛 어머니들은 하늘에 뜬 달과 정화수에 뜬 달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먼 길 떠난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집안 대를 이을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과년한 딸이 좋은 짝을 만나서 잘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 외에도 한 많고 설움 많았던 우리 민족들에게는 오래된 당산나무나 큰 바위, 혹은 태양과 달을 보며 비손할 일이 많았다. 달 항아리는 그 많은 바람을 담은 소망의 실체였다.

이 교수는 도자기가 사람의 몸과 같다고 한다. 사람의 몸이 그렇듯이 도자기도 뼈의 역할, 살의 역할, 피의 역할, 이렇게 세 가지 역할을 하는 성분이 흙 속에 섞여 있어서 도자기가 만들어진다고. 그러고 보니 사람의 뼈도 백토처럼 흰색이다. 하얀 뼈를 생각하자니 황순원의 소설 ‘독 짓는 늙은이’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병이 들어 더 이상 어린 아들을 키울 수 없게 된 송 영감은 방물장수에게 아이를 딸려 보내고 가마 안쪽 깊숙이 기어들어간다. 자신의 터져나간 독을 대신하려는 듯 송 영감은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는다. 생각난 김에 교수님께 물어보았다.

“사람의 뼈가 도자기 흙에 섞이면 어떨까요?”

“발색에 영향을 주죠.”

그러면서 이 교수는 인 성분이 들어가면 발광이 다르다고 하신다. 사람의 뼈도 오랜 세월을 거쳐 흙이 되고 말듯이 세상 모든 흙의 원형은 돌이었다. 흰 암석으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돌은 사람의 뼈처럼 오랜 풍화작용을 거쳐 흙이 된다. 흙은 우리 땅에서 먼저 살다 간 선조들의 뼈와 살이고, 혼이다. 변하지 않는 것, 변할 수 없는 땅의 살이었던 그런 것.

이 교수의 도예연구원이 남산면 흥정길에 있다. 학교에서 30분 거리라며, 처음 작업실을 얻을 때의 추억담을 들려준다. 4월 어느 날에 흥정리에 들어가니 사방이 온통 복사꽃이더란다. 그때가 1996년이었다고. 산에 잇따른 언덕바지 가득 복사꽃이 핀 절경은 봄이 주는 놀라운 환희다. 복사꽃이 만든 무릉도원 그 어디쯤에서 이 교수는 선대에서 물려받은 일도 아닌 도예를 위해, 스스로 일구고 가꾼 자기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다. 백자의 부신 흰빛을 향해.

유럽이 채우는 문화라면 동양은 비우는 문화라고 한다. 서예나 사군자, 도자기 등의 우리 문화가 모두 비움을 중요시한다며, 가장 완벽하게 비운 것이 달 항아리라고. 흰색은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반면에 뭔가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충동을 받을 수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멈추는 것’이라는 말씀이 서늘한 여운을 준다.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