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물건을 좋아한다. 공장에서 생산된 각 잡힌 새 상품보다 사람의 손을 타고 구겨진 것들에 더 매력을 느낀다. 연식이 오래된 물건을 만나면 너는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니, 하고 질문하고 싶어진다. 누군가 사용했던 물건이 시공간을 타고 이리저리 흘러 내 앞에 나타나는 일. 그건 일종의 운명적 만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무 살 무렵에는 광장시장이며 동묘를 습관처럼 방문했고, 해외여행을 계획할 때면 벼룩시장에 들르는 코스도 빼놓지 않았다. 그곳에는 별별 것들이 다 있었다. 다양한 물건들은 편안하고 익숙한 감각과 함께 자신을 알아봐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멀쩡한 것들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슬프기도 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이 태어나는 세계 속에서 오래된 물건만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매력이 있다고. 어쩌면 나 역시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 하는 감상에 빠지면서.

중고물품을 피하는 사람 중에서는 모르는 이가 썼던 물건이라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게 만약 평생을 불운하게 살았던 사람의 접시면? 죽기 전에 입었던 코트면? 하지만 그런 것쯤은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인생에는 행운보다 불운이 더 자주 찾아오고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니. 나는 중고서적을 자주 구입하는 편이다. 뻣뻣한 종이의 질감보다 누렇게 변색하여 버석버석한 느낌이 더 좋다. 떠오르는 생각을 적고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새 책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책을 읽다 문득 발견하게 되는 낙서도 어떤 설렘을 몰고 온다. 책장 귀퉁이의 고불고불한 글씨를 마주하며 손끝이 맞닿은 이의 막연한 얼굴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내게 ‘당근마켓’의 등장은 정말이지 반가운 소식이었다. 매일같이 온라인으로 열리는 동네 벼룩시장이라니! 그야말로 인터넷 공화국다운 면모가 아닌가.

다양한 중고거래 앱이 있지만, 그중에도 당근마켓은 사람들의 폭발적인 관심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낸다. 서비스 시작 5년 만에 월간 실 이용자 수 800만 명을 끌어모으며 현재 국내 중고거래 앱 중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의 이유로는 단연 거래의 편의성과 접근성을 들 수 있다.

당근마켓은 ‘당신 근처의 마켓’을 줄인 말이다. 이용자가 사는 지역에서 앱을 접속해서 GPS 인증을 받으면 가까운 이웃과 소통할 수 있게끔 되어있다. 이들끼리 중고 물품을 사고팔 수 있으며 동네 생활에 대해 잡담을 나누고 숨은 맛집이나 편의시설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기능도 있다. 특히 당근마켓의 주목할 점은 거래의 지역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존의 온라인 중고 장터와의 확실한 차별성이 보인다. 집 근처의 이웃을 직접 만나서 거래하기 때문에 물건의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직거래 시스템은 중고 거래의 고질적 문제였던 사기 피해의 가능성을 현저히 낮췄다. 사용 방법도 간편하다. 가입하고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 끝이다. 그렇기에 뭐든 부담 없이 매물로 올릴 수 있다. 정말 이런 걸 산단 말이야? 하는 의구심이 들기 마련이지만, 정말 사는 사람이 있다. 그건 내가 보장할 수 있다.

내가 처음으로 당근마켓에 판 물건은 머리핀이다.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나니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물건이었다. 평소였다면 어느 구석에 처박아놓거나 쓰레기장에 버렸을 것이다.

나는 머리핀을 깨끗하게 닦은 뒤 사진을 찍어서 당근마켓에 올렸고 몇 시간 만에 거래하자는 연락이 왔다. 근처 지하철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 사이에서도 구매자의 모습은 한눈에 들어왔다.

“저 혹시 당근…?” 쭈뼛쭈뼛 다가가니 “네. 당근….”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머리핀과 현금을 교환했다. 나는 그 돈으로 와인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쓰지 않는 머리핀을 와인과 바꾸다니. 정말이지 만족스러운 교환의 경험이었다.

과거의 나는 물건을 깨끗하게 쓰는 편이 아니었다. 어차피 소모품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질 좋고 튼튼한 상품을 사서 오랫동안 사용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절약이었다. 하지만 중고거래를 일상화하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내가 구입한 물건을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가 다시 쓸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내 습관에도 사소한 변화를 불러왔다. 내가 완전히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도 공유할 수 있다는 가치관이 정립되자 어떤 것이든 허투루 대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에겐 필요 없어진 것이 내겐 절실하게 필요할 때가 있다. 당근마켓은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기에도 좋다. 중고 상품의 메리트는 역시 저렴한 가격이다. 새 상품을 사는 것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필요한 것을 구입하는 이점을 누릴 수 있다. 이뿐 아니다. 거래를 하다 보면 이따금 사탕꾸러미나 ‘잘 사용하시길 바라요’ 하는 쪽지같이 달콤한 선물을 받기도 한다.

그런 다정한 마음을 받으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다. 맞아, 우리는 근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지, 하는 당연한 사실이 떠오른다. 멀게만 느껴졌던 이들이 성큼 가깝게 다가오게 된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무엇보다 중고 거래는 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속가능한 소비다. 우리는 현재 환경오염과 쓰레기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다다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환경문제는 실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창문을 열면 마주하는 미세먼지와 급격한 기후 변화는 인류가 지구에 발 디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문처럼 여겨진다. 미세플라스틱이 바다를 점령하고 해양생물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가슴 아파하는 와중에도 어디선가 쓰레기는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특히 SNS는 거대한 백화점이나 마찬가지다. 인스타그램에 전시된 인플루언서의 삶의 방식이나 유명 유튜버의 ‘쇼핑하울’은 매일같이 새로운 소비를 부추긴다. ‘이 물건이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카피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소비를 권장하는 사회는 소비 이후에 대해서는 절대 책임지지 않는다. 나를 설레게 했던 상품이 하루아침에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숨 쉬고 있다.

실제로 당근마켓에서는 중고거래로 인해 누적 19만t에 달하는 온실가스 감소 효과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자원의 재순환으로 환경을 보호한 좋은 사례다. 서로가 서로의 주변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물건을 공유하는 것. 이런 행동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타인이 사용했던 상품을 단순히 ‘헌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 ‘윤리적인 것’이라고 여기는 의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변화를 토대로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환경오염의 문제가 절실하게 다가오는 요즘,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 소비에 관하여 골몰해 보아야 한다. 갈수록 소비는 편리해져 간다. 손가락 하나로도 값비싼 제품을 뚝딱 결제할 수 있다. 찰나의 순간에 내 몫의 거대한 물건을 떠안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늘 의식적으로 경계하며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의 틈새를 걸어가야 한다. 내가 행하는 소비가 합당한가. 이 욕망이 정말 내 것이 맞나. 날카롭게 질문을 던져보자. 필요한 건 항상 우리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