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씨와 친구들의 가을여행 모습.

떨켜를 준비하는 나무에 가을바람이 분다. 어쩔 수 없이 남은 잎을 떨구고 새잎을 준비하는 자연의 섭리란 우리의 인연들과도 닮아있는 것 같다. 지난 여름은 소란과 정적 속에서 한 시절이 갔다. 어찌 됐건 만인이 그리워하는 가을의 초입에서부터 나는 지금 추녀가 되고 싶어 설레고 있다. 어느 해 보다 길고도 지루한 여름날이었다. 그동안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했던 지난 계절의 꽃들과 사람들. 어쩌면 시절인연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존재를 기다리며 벌써부터 기쁨에 젖는다. 그들과의 해후는 설레면서도 얼마나 소망하고 갈망한 시간들이었나 생각해 본다. 평소에 너무 가까이 있어 느끼지 못했던 아쉬운 정도 그러하겠지만 아무튼 보고 싶은 마음이 호수만 한 것은 틀림이 없다.

가만히 그동안 만나왔던 여러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만난 사람들, 또는 남편 회사와 관계된 만남도 있다. 세월이 흐르고 나니 어느 순간 떠나간 사람도 있고 까마득히 잊은 사람도 있고 그대로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떠나갔지만 고마웠고 좋아서 생각나는 사람도 있다. 여러 동아리에서도 어쩌면 필요에 의해 만나고 스치고 지나간 인연도 많다. 그러나 필요에 의하지 않았어도 오래 함께한 사람도 있고, 어떤 이유에서건 떠났다가 다시 만난 사람도 있다.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오는 인연 막지를 말고’라는 시절인연 노랫말이 생각난다. 모든 사물의 현상이 시기가 돼야 일어난다는 말을 가리킨다. 즉 때가 되어야 인연이 합한다는 불교 용어로서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고 싶지 않아도 시절의 때를 만나면 기어코 만날 수밖에 없다는 그것을 시절인연이라고 한다.

이번에 만날 사람들은 가을에 잎을 떨굴, 봄여름 수고한 나무들과 가을에 피어날 꽃들을 함께 기다리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다. 단풍과 무채색과 가을 하늘을 빛낼 하얀 억새까지. 그것은 멀리에 있어도 오래 소통하지 않았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 우정과도 같은 것. 시절의 인연들은 나뭇잎 하나라도 다 쓸모 있을 거라는 믿음 하나로 요즘을 버티고 살아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또는 내가 응원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첫사랑이 떠나가는 것도, 좋은 관계였던 사람들이 떠나간 것도 슬퍼하거나 서운해하지 말일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야 할 인연들은 만날 것이고 굳이 붙잡지 않아도 떠나갈 인연은 떠나는 것이니 섭섭함에 울지도 말아야할 것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다정한 시절인연이 다가 올테니…. /김은희(포항시 남구 대이로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