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의 시’표지.

좋은 글이나 마음에 와 닿는 시를 공유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마음 따뜻한 오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 나는 류시화 작가가 최근 엮은 ‘마음챙김의 시’라는 책을 읽으며 어떤 시가 나에게 왜 와 닿는지를 이야기하였다. 친구는 중학생이 된 아들에게도 가장 마음에 드는 시를 선택해서 엄마에게 낭독을 해달라고 하였는데, 그 낭독한 음성파일을 내게 보내 왔다. 이제 막 변성기가 온 아이의 목소리에서 들리는 시는 ‘눈풀꽃’이라는 시였다. 겨울이 채 끝나기 전 이른 봄에 피는 수선화같은 흰색꽃이다.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하리라.’ 사춘기 아들과 친구의 지난 세월의 일상들이 한 순간에 눈앞에 떠올랐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눈풀꽃’이라는 시를 쓴 시인이 20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한 시집은 단 한 권도 없고, 류시화 작가의 책에서 소개한 게 전부인 ‘루이스 글릭’이라는 여성시인에 대해 검색을 하고 친구와 카톡으로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예측불가능한 대위기의 시기에 고립, 단절, 불안, 고독 속에서도 소생하려는 생명의 의지를 잘 표현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삶의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고 시를 통해 이를 넘어서는 회복력으로 자연과 일상 속에서 녹아내는 글릭의 시가 나에게도 깨달음을 준다.

류시화 작가의 글들을 너무 좋아하여 책이 닳도록 읽기를 반복했던 류시화 작가의 책이 마치 오래된 내 친구 같다. 마음 한 켠에 와 닿는 시 하나가 나에게 울림이 되고 위로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류시화 시인은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세상을 경이롭게 여기는 것이며, 여러 색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진실한 깨달음이 시의 문을 여는 순간이 있다!”라고 했다. 2005년도 출판된 류시화 작가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아직도 꺼내 읽기를 반복한다. 15년이 지나도 진실한 깨달음의 순간이 계속 일어나기 때문이다. 책을 펼쳐 호시노 도미히로의 ‘일일초’를 읽었다.

‘일일초’

오늘도 한 가지

슬픈 일이 있었다.

오늘도 또 한 가지

기쁜 일이 있었다.

웃었다가 울었다가

희망했다가 포기했다가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

그리고 이런 하나하나의 일들을

부드럽게 감싸 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평범한 일들이 있었다.

호시노 도미히로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체육 교사였던 그는 수업 중 학생들에게 기계체조를 가르치다 철봉에서 떨어져 전신마비로 장애라는 절망의 나락에서 평범함의 소중함을 깨닫고 ‘일일초’란 시를 썼다고 한다. 오늘도 나는 한 편의 시를 통해 오랜 친구와 진실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삶의 평범함이 이토록 소중하게 느껴지는 하루를 보낸다. /김예원(경주시 양북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