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정 희

소리 내지 말고
눈물 흘리지 말고
한 사흘만 설산처럼 눕고 싶다

걸어온 길
돌아보지 말고
걸어갈 길
생각할 것도 없이
무릎 꿇을 것도 없이
흰 옷 입고 흰 눈썹으로

이렇게 가도 되는 거냐고
이대로 숨 쉬어도 되는 거냐고
이렇게 사랑해도 되는 거냐고
물을 것도 없이

눈빛 속에 나를 널어두고 싶다
한 사흘만
설산이 되고 싶다

하얗게 눈덮힌 설산은 인간들의 더럽고 불순함이 섞여들지 않은 고요하고 청정한 평화 공간이다. 사느라고 아옹다옹 거리며 더럽혀진 심신을 설산에 들어 훌훌 벗어버리고 진정한 정화와 힐링을 누리고 싶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때묻지 않는 깨끗한 무욕의 세계를 열망하는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