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우리에게 ‘판관 포청천(包淸天)’으로 잘 알려진 포증(包拯)은 중국 역사에서 청백리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는 북송 인종(仁宗) 천성 5년(1027) 진사 급제를 시작으로 1061년 추밀부사에 오른 인물이다. 포증은 송사를 처결할 때 명민하고 정직했다. 억울한 사람이 직접 찾아와 시비곡직을 따지도록 정문을 열어 놓아 간교한 아전들의 개입을 차단했다. 거무튀튀한 얼굴의 그가 “개작두를 대령하라!”고 호령하는 연속극 장면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포증이 송나라 수도를 책임지는 개봉(開封) 부윤으로 임명돼 귀척(貴戚·임금의 인척)과 환관들마저 덜덜 떨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한 인종의 결단이 있었다. 그는 1062년 5월 24일에 개봉에서 향년 6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항간에는 그를 꺼려한 자들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설이 돌기도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충돌 전선이 확대일로에 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에 이어 정세균 총리까지 ‘윤석열 찍어내기’에 합세한 형국이다. 민주당과 추 장관은 드디어 대검찰청의 특수활동비를 시비하기 시작했다. 야사(野史)에나 등장하는, 정적 제거용 ‘호주머니 뒤지기’에 돌입한 꼴인데, 구경하기조차 불편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위 고수가 참으로 어려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만약 여권의 ‘윤석열 찍어내기’ 자귀질이 성공할 경우 대한민국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친정부 성향 정치검사가 검찰총장 자리를 꿰어 찰 공산이 크다. 한차례 거센 인사 광풍 이후 검찰은 온전히 여당 정치권 손아귀로 들어가게 된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는’ 검찰상이란 형해(形骸)도 없이 소멸할 것이다.

조국 재판, 김경수 선거여론 조작 의혹 사건 등의 ‘물타기’ 공작이 분주해지고, 청와대의 울산 선거개입, 여권 인사들의 라임·옵티머스 사기사건 연루 의혹 따위는 흐지부지 사라질 개연성이 높다. 대통령·국회의원·법관·지방자치단체장·검사 등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의 비리를 수사·기소할 수 있는 공수처마저 정부·여당의 의도대로 편파적으로 꾸려질 경우, 명실공히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폐허만 남게 된다.

집권세력은 전매특허인 ‘사정(査正)’ 드라이브를 새로 걸고, 야당 정치인들과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더 참혹한 ‘적폐청산’의 공동묘지로 갈지도 모른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걸핏하면 내지르던 ‘20년 집권, 50년 집권’ 시나리오가 드디어 그 실체를 드러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맥없이 무너지고 말 것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겐 어떤 사악한 바람에도 아주 쓰러지지 않고 끝내 일어서온 억센 민초(民草)의 정신이 있다. 광신적 확증편향주의 마약에 찌든, 오도된 악성 권력 바이러스를 일거에 제압할 계기가 어떻게든 만들어질 것이다. 나라를 좀먹는 거악(巨惡)들을 무릎 꿇리고 힘차게 “개작두를 대령하라!” 외치는 포청천은 살아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