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초청강연 유홍준 교수 “느티나무 없는 감은사 터 상상 못 해”
고사 위기에 안타까움 토로… “뿌리 석축 등 인공 구조물 탓인 듯”

지난달 31일 본지가 주관한 초청강연회에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고사 위기에 처한 감은사지 느티나무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날 오후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감은사터에 있는 느티나무가 앙상한 가지만 남은 모습이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동쪽과 서쪽을 지키듯 웅장하게 선 석탑과 그 주위에 싱싱한 생명력으로 빛나는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없는 감은사 절터를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습니까?”

지난달 31일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 초청강연회<관련기사 2면>를 위해 경주를 찾은 유홍준(명지대 석좌교수) 전 문화재청장이 고사(枯死) 직전의 위기에 처한 감은사지 느티나무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감은사는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호국의지가 담긴 절인 동시에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등 빼어난 신라의 불교 유물이 다수 발견된 예술적 사찰. 그런 이유로 사계절 내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경주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가 됐다.

“조형미와 장엄함을 두루 갖춘 감은사 석탑은 위대하게 보인다”라고 평한 유 교수는 “특히 탑의 가운데로 솟아오른 철심은 신라 건축예술의 완결미를 유감없이 보여준다”고 추켜세웠다. 유홍준 교수의 감은사 사랑은 그의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아! 감은사, 아 감은사 탑이여!’라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진한 애정을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다.

쌍둥이처럼 우뚝 선 동탑과 서탑 지척에서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감은사지 느티나무는 이 절터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던 대표적 상징물이었다. 그 나무가 있음으로 해서 한 폭의 아름다운 동양화 같은 풍경이 완성됐던 것.

때로는 역사 유적과 유물을 제대로 보존하고, 보다 근사하게 보완하려는 노력이 역효과를 일으킬 때가 있다. 감은사지 느티나무가 바로 그런 경우로 보인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수백 년 동안 마을을 상징해오던 나무들이 많이 죽었다. 당산나무 뿌리 위에다 콘크리트를 가져다 바르니 살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한 유홍준 교수는 감은사지 느티나무의 고사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평소 교류하던 식물학자와 긴 문자를 주고받기도 했다.

이날 강연회에서 유 교수는 식물학자가 보내온 문자를 참석자들에게 공개했다. 그 문자의 핵심은 ‘느티나무를 보존하기 위해 뿌리 주변에 석축(石築)을 쌓고, 근처에 인공 구조물을 여러 개 만든 것이 나무가 고사 상태에 이른 이유로 추정된다’는 것.

비단 유 교수만이 아닌 적지 않은 역사학자들이 말한다. “유적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나무와 숲이 사라져서야 되겠는가. 때로는 자연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더 효과적인 유적과 유물 관리가 될 수 있다”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감은사지 느티나무 다시 살아나 절터의 풍경이 온전해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는 유 교수의 말은 향후 경주의 유적지 관리와 보존사업을 진행할 이들에게 진지한 고민거리 하나를 던져주고 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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