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아름다운 산사. 사진은 영주 부석사의 가을 풍경.

산마다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어 장관인 시기다. 하지만 아직도 꼬리를 내리지 않은 ‘새로운 역병’ 코로나19로 인해 산 속 조용한 절에서 가을을 즐기기가 쉽지 않다. 그 아쉬움을 달래줄 방법이 없을까? 궁여지책으로 영민한 시인의 산사 기행문을 꺼내 든다. 그가 안내하는 만산홍엽(滿山紅葉)의 10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적멸의 문장으로 독자들을 설레게 할 ‘피었으므로, 진다’

시인 정호승은 책을 접하고 이런 말을 남겼다.

“여느 절 여행기와 달리 불교에서 최고의 성지로 꼽히는 5대 적멸보궁과 3보 사찰 그리고, 3대 관음성지 등을 골라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을 쓴 고감도 명상 여행 에세이다. 시인의 현란한 감성과 정제된 지적 사유가 돋보이는.”

혁명과 해탈(解脫)은 지향하는 사람이 많지만, 완성되기가 몹시 어려운 불능의 명제라는 차원에서 이음동의어(異音同意語)다.

‘모든 인간이 존엄을 갖추고 평등을 누리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의해 분배받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혁명가들. 그러나, 자신의 욕망 때문에 수만 명의 행복을 박탈할 수도 있는 게 사람이란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욕망하는 존재’로서의 인간들에게 혁명이란 요원한 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시적인 문장이 인상적인 ‘피었으므로, 진다’.
시적인 문장이 인상적인 ‘피었으므로, 진다’.

다수의 승려들이 궁극적으로 이르고자 하는 해탈 역시 마찬가지. 살기 위해 숨을 쉬고, 배고파 밥을 먹고, 화장실에서 배설하는 인간 주제에 어떻게 ‘속세의 백만 가지 속박에서 온전히 벗어나 자유로운 정신에 이른 상태’에 가닿을 수 있겠는가? 이 역시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닐지.

여기 한 시인이 있다. 혁명과 해탈 사이에서 일생을 떠돈 사람. 이륭과 이산하라는 2개의 필명을 가졌던 사내다. 본명은 이상백.

1960년 경상북도 영일 출생이니 올해가 갑년(甲年). 부산 혜광고등학교 재학 시절, 후배 시인 안도현과 함께 한국에서 열리는 고교생 대상 백일장의 절반을 독식했다. 상장 수십 개가 가난한 문학청년이었던 그를 경희대학교 문예장학생으로 만들었다.

1980년대는 그가 시만 쓰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세칭 ‘운동권 대학생’이 되어, 지하신문을 만들고 시위 현장에서 돌을 던졌다. 수배가 떨어졌고 몇 년을 도망자로 살아야 했다. 그 시절, 목숨을 담보로 쓴 시집이 노란 유채꽃 위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한라산’. 군사 독재정권은 순정한 시를 쓰고 싶어 했던 겨우 스물일곱 살 청년을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반란 수괴’라는 죄명으로 구속한다.

이른바 ‘양심적 지식인들’도 증인으로 법정에 서는 걸 거부했던 살벌한 ‘한라산 필화사건’. 감옥을 나온 시인은 제주도를 방문해 4·3항쟁에서 살아남은 자들로부터 학살의 증언을 듣고는 붓을 꺾어버린다. 시가 혁명의 무기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땅을 쳤다. 그가 다시 시를 쓰게 되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산하의 책 ‘피었으므로, 진다’엔 “시인의 산사기행(山寺紀行)”이란 부제가 붙었다.

“평생 비종교적 관점에서 학생운동과 사회운동을 해온 사람이 왜 갑자기 절을 찾아다닌 거야?” 어떤 독자는 뜨악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이산하를 절반만 아는 이들의 푸념이다.

이미 말했듯 다수가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 혁명과 세속 초월 지향의 승려들이 꿈꾸는 해탈은 이음동의어다. 다르게 발음되지만 실제로는 같은 뜻을 가진 단어.

젊은 날 이산하는 혁명을 꿈꾸며 청춘의 눈물과 주먹을 소비했다. 이제 이순(耳順)에 이른 그는 고요한 산그늘 아래 적요한 풍경소리 울리는 절에서 무엇을 찾고자 했을까?

깊은 산 속 절을 여행 중인 시인 이산하.
깊은 산 속 절을 여행 중인 시인 이산하.

이 책을 펴든 독자는 알게 된다. 시인 이산하는 ‘피었으므로, 진다’를 통해 혁명과 해탈에 관한 구체적 진술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음을.

한때는 이산하와 ‘문학적 라이벌’이었던 시인 안도현은 “이 책은 눈부신 고요가 빚어내는 꿈결 같은 소리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지혜로운 독자라면 이 유려한 산문집 도처에 고여 있는 수백 편, 아니 수천 편의 시를 덤으로 읽게 되리라”는 상찬을 바쳤다.

후배 시인 김주대 역시 “북소리 따라 나를 치고 또 쳐 결국 인간의 존엄성에 이르는 시인. 그 시인의 발자국에 깊이 새겨진 적멸의 문장에 감사한다”는 뜻을 전했다. 당신은 ‘피었으므로, 진다’에 어떤 독후감을 남기게 될지 궁금하다.

 

매혹적인 산사 기행집 ‘적멸보궁 가는 길’.
매혹적인 산사 기행집 ‘적멸보궁 가는 길’.

▲이 가을에 던져진 화두 혹은, 공안 ‘적멸보궁 가는 길’

세속의 명리를 버리고 산사에 은거(隱居)하는 스님들이나 가질 법한 초월의 웃음과 눈빛. 이산하의 그 ‘웃음’과 ‘눈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적멸보궁 가는 길’은 이 물음에 답하는 책이다.

이산하는 경상북도 깡촌에서 태어나 친구 없는 외로움을 책읽기로 달랬다. 장 폴 사르트르와 비트겐슈타인은 물론이고, 까까머리 중학생이 가스통 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까지 필사해가며 읽었다.

난독의 체험은 동년배들을 기죽이는데 유효적절하게 사용됐다. 그와 대학 동기인 문인들은 당시의 이산하를 지칭해 “유식 혹은, 개똥철학으로 언제나 나를 주눅 들게 했다”고 고백한다.

다독(多讀)에다 다상량(多商量)이니 글도 잘 썼다.

“경희대, 중앙대, 동국대, 서울예대, 문예잡지 ‘학원’, 각종 예술제 백일장까지 글 써서 받은 상장이 40개쯤 될 거야.” 이산하가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이다.

‘적멸보궁 가는 길’은 그가 한국의 대표적 명산대찰이라 할 5군데의 적멸보궁(부처의 진신사리가 보관된 절)과 많은 고승(高僧)을 배출한 3보 사찰, 불자들의 기도를 들어주는 영험이 있다는 3대 관음성지를 돌아보고 쓴 기행문이다.

그러나, 책은 기행문보다는 ‘시집’에 가깝다.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5행의 짧은 시가 무심코 책을 펴든 독자를 놀라게 한다.

나를 찍어라
그럼,
난,
네 도낏날에
향기를 묻혀주마.

딱 20글자로 이뤄진 시 ‘나무’는 이 책이 가진 성격을 결정짓는다. 그가 절집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절집의 불심(佛心)이 이산하의 말투처럼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눈 밝은 독자라면 이 책의 도처에 고여 있는 수백, 수천 편의 시를 보게 될 것”이란 평가는 과장이 아니다. 예컨대 아래와 같은 문장들을 보라.

‘높은 것이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넓어지기도 전에 높아지는 것은 항상 위태로운 법이다’.
‘자꾸만 벌어져가는 나이테의 간격보다도 조용히 깊어져 가는 가을 강의 속살을 먼저 떠올린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를 매혹시키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백지뿐인 삶’.

‘적멸보궁 가는 길’은 미려한 문장으로 축조된 아름다운 시의 성채다. 그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이산하는 사찰이 생겨난 내력과 절 주변을 떠도는 민담과 전설, 이름 높았던 승려들의 일화를 책에 담았고, 자신이 불교에 경도됐던 이유까지를 때로는 정밀하게, 때론 담담하게 묘사하고, 털어놓는다.

세상에 대한 반항심과 문학소년의 오만함으로 가득 찼던 청년 이산하가 회갑을 맞았다. 그리고 말한다. “다 지나가노니, 헛되고, 헛되도다”.

삶과 세상에 정면으로 맞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던 시인의 짧은 문장이 깊은 산 속 절의 붉디붉은 단풍처럼 강렬하다.

여기에 이런 말도 덧붙인다. “아무래도 인생의 깊이는 깊은 강물보다 얕은 논물 속에 더 있어 보여. 난 언제쯤 그 깊이에 닿을 수 있을까?”

‘적멸보궁 가는 길’은 2020년 깊어진 가을 우리에게 던져진 화두(話頭) 혹은, 공안(公案)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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