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순간, 검은 예감’

게오르크 트라클 지음·시선집
민음사 펴냄·1만3천원

오스트리아 시인 게오르크 트라클(1887∼1914)은 자기혐오에 시달리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시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푸른 순간, 검은 예감’(민음사)은 게오르크 트라클의 대표 시선집이다. 게오르크 트라클은 유럽 표현주의 대표 시인으로,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했다. 당시 유럽은 전통의 쇠락과 새로운 시작이 길항하고 있었고, 특히 오스트리아는 미술, 음악, 문학, 정신의학, 철학 등 예술과 사상의 전 분야에서 미증유의 탐험과 특이한 문화적 동요가 함께 일어나던 공간이었다. 유복한 사업가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건강하고 바른 시민의 삶에 그다지 잘 적응하지 못했던 그는 세기의 전환을 온몸으로 살아 내며 끝까지 ‘몰락하는 자’로서 노래했다. 그

의 시에서는 바깥으로 발산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 깊숙이 침잠하는 고통, 우울과 전망 없음이 자연의 다채로운 색채와 음향이 뒤섞인 독특한 감각으로 구현된다.

“저녁에 박쥐들의 울음소리 들려오고.

두 마리 가라말이 초원에서 뛰어논다.

붉은 단풍나무는 바람에 살랑거린다.

나그네에게 길가의 작은 선술집 나타나고.

새 포도주와 견과들은 맛이 훌륭하다.

어둑해져 가는 숲에서 술에 취해 비틀대는 것은 멋지다.

검은 가지사이로 고통스러운 종소리 울린다.

얼굴에 떨어지는 이슬방울.”― ‘저녁에 나의 마음은’에서

그의 시는 말로 에워싸여 있지만 침묵에 가깝다.

같은 오스트리아 출신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트라클 시에 대해 “색채로 연주하는 음악”에 비유했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똑바로 가리키기 보다는 우리가 끝없이 마주치는 색채와 소리에 집중하고 있다는 해설이다.

또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트라클의 시에 대해 “시야의 폭, 사유의 깊이, 말 행위의 단순 소박함이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친밀하고도 영원하게 빛난다”고 남겼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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