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얼마전 ‘한국 진보통치자들이 발산한 내면의 권위주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문재인 정부와 여권 인사들을 평가하면서 “남에 대한 비판은 잘하면서 남의 비판은 못 참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1425년 세종대왕의 어록에서 “나는 고결하지도, 통치에 능숙하지도 않소. 하늘의 뜻에 어긋날 때도 있을 것이오. 그러니 내 결점을 열심히 찾아보고, 내가 그 질책에 답하게 하시오”라는 구절을 인용해 문재인 정부에 뼈아픈 조언을 던졌다. 진보진영 인권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정부보다 평등하고 개방적이며, ‘이견에 관대할 것’을 약속해놓고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 내 비판을 참지 못하는 기류는 민주당 내 친문 세력, 강성 지지자들의 폐쇄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에 기권표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징계 처분을 받았던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탈당 선언으로 이런 분위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금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을 떠나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민주당은 예전의 유연함과 겸손함, 소통의 문화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며 “국민들을 상대로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서슴지 않는 것은 김대중이 이끌던 민주당, 노무현이 이끌던 민주당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온라인 중심의 친문 강성 지지자들은 당내 비판을 하는 의원들에게도 ‘문자테러’등 공격을 서슴지 않고 있어 우려스럽다.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의혹을 두고 “병역은 국민의 역린”이라고 비판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나 추 장관의 대응방식을 비판했던 조응천 의원도 친문세력들의 표적이 돼 “차라리 국민의힘으로 가라”는 막말까지 들었다. 민주당 내 자성을 위한 목소리에 재갈이 물린 셈이다.

옛 중국 주나라 여왕이 재위 34년째인 기원전 844년, 괵공 장보와 영이공을 등용해 산과 숲·하천·호수를 모두 왕의 소유로 선포하고, 평민은 거기에서 고기를 잡거나 사냥을 하는 것은 물론 땔나무조차 벨 수 없게 했다. 백성의 재물을 수탈하고 가혹한 형법을 시행하기를 밥 먹듯 했다. 소목공(召穆公)이 “백성이 포악한 명령을 견디지 못하여 분노의 목소리가 크다”고 간했으나 왕은 오히려 노여워하며 위(衛)나라의 무당을 불러 비방하는 자들을 감시하게 하고, 고발이 들어오면 죽였다. 소목공은 다시 이렇게 간했다. “백성에게 입이 있는 것은 대지에 산천이 있어 거기에서 모든 재물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백성들이 마음껏 말하도록 하면 정치를 잘 하고 못함이 다 반영되어 나옵니다. 좋은 일을 밀고 나가고 잘못된 일을 방지하는 것은 대지에서 재물과 의식을 생산하는 것과 같습니다”

얼굴없는 입이 난무하는 온라인 세상에서 건전한 당내 비판을 막아서는 지금의 더불어민주당 분위기는 언로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입에 재갈을 물린 채 이뤄지는 정치는 폭정이거나 독재, 둘 중에 하나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