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문화의 상징과 공간 (11) 효자시장 골목길

지곡 건널목
지곡 건널목

골목길에 출입문이 있을 리 없지만 효자시장 골목길에 가려면 지곡건널목을 거쳐야 제대로다. 요란한 경고음이 울리면 제아무리 광을 낸 승용차라도 차단기 앞에 멈춰야 한다. 차단기가 올라간 뒤 홀로 시간이 멈춘 듯한 만물수퍼마켓을 지나야 비로소 골목의 진면목을 만난다.

 

1960년대 포스코 사원주택단지 들어서며 발길 줄잇던 동네길, 주변 개발로 내리막 걸어

2015년 골목 ‘첫 가게’ 달팽이책방 시작으로 작지만 개성 넘치는 간판 내걸며 청년들 모여

식당·카페·공방 등 ‘효리단길’ 불리며 인기 높지만 ‘뜨는 골목’ 뒤따르는 문제 고민해봐야

□ 효자가 살았다고 해서 ‘효자동’이라 불려

효자가 살았다고 해서 효자동이냐고 생각했다면 당신의 짐작이 맞다. 효자는 전국 어디에나 살았기에 현재 효자동이 남은 도시는 서울과 전주, 춘천, 고양을 포함해 다섯 곳이다. 평안남도에서도 검색이 되니 그 이상일 수도 있겠다. 포항에 살았다는 효자는 전희(田禧)라는 조선시대 인물이다. 부친이 돌아가시고 묘소 옆에서 3년간 곡을 하자 효심에 감탄한 범이 밤마다 함께 지키다 날이 밝으면 사라졌다고 한다. 모친상에도 마찬가지였기에 조정에서 효자각을 사액했다. 세월이 흘러 비각은 사라지고 비석은 현재 효자초등학교 북쪽으로 옮겨졌다.

효자동 전에는 버들골이라는 예스러운 이름도 있었다. 형산강변에 우거진 땅버들에서 유래했기에 땅벌동 혹은 유동(柳洞)이라고도 불렀다. 나룻배가 한가로이 떠다니는 한 폭의 동양화 같았을 마을이 개발된 것은 1960년대. 포스코가 사원주택단지를 지으면서 인부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을 상대하는 식당과 노점상이 들어선 곳이 효자시장이다. 시장 바로 앞에 포스코 직원들이 이용하는 효자역이 생겼고, 출퇴근 시간에는 직원들의 유니폼으로 노랗게 물드는 골목이 형성되었다. 이때가 효자시장의 전성기였는데, 2000년대 이후 이동지구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시장과 인근 상권은 서서히 내리막을 걸었다.
 

달팽이책방 외부 모습
달팽이책방 외부 모습

□ 효자동 골목길의 ‘첫 가게’ 달팽이책방

골목길 생태계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한 모종린의 ‘골목길 자본론’에 따르면 골목상권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그곳에서 처음 창업한 ‘첫 가게’에서 시작된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색 있는 첫 가게를 찾는 사람들로 유동인구가 증가하고 인근에 다양한 가게가 줄지어 들어선다. 그렇게 볼 때 효자시장 골목길의 첫 가게는 달팽이책방이다.

2015년 1월 문을 연 달팽이책방은 포항에 처음 들어선 독립출판서점이다. 책방지기 블로그에 실린 일기에는 책방을 시작할 당시의 풍경이 이렇게 묘사돼 있다.

책방을 오픈하고 2주 만에 친구와 ‘재미삼아’ 낭독 모임을 시작했다. 한겨울 그것도 인적 없는 골목에 문을 열었으니 손님이 있을 리 만무했다. 우리는 서가에 꽂힌 소설책 한 권을 꺼내서 국어시간에 하듯이 한 페이지씩 돌아가며 크게 소리 내어 읽었다. 소설을 낭독한다는 재미에 더해 각자 목소리톤에 따라 색다른 즐거움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신이 난 우리는 바로 SNS에 모임 공고를 내고 매주 같은 시간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다음 주에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왔고 개중에는 경주나 울산 등 멀리에서 온 분도 있었다.
 

달팽이책방 내부 모습
달팽이책방 내부 모습

효자시장 골목길의 변화는 이렇듯 소설 낭독에서 시작되었다. 저자가 직접 출판의 모든 과정을 진행하는 독립출판물은 일반 서점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특하고 개성 있는 아이템이 많다. 자신의 취향을 찾아 달팽이책방으로 모인 사람들은 역사와 시, 소설, 희곡, 그림책 등 다양한 분야의 독서모임을 만들고, 넘치는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드로잉, 홍차, 와인, 잡지 제작을 배우는 수업들이 생겨났다. 책방의 한쪽 공간에서는 늘 작은 전시가 이어지고 저자 초청 북 토크와 인디뮤지션의 공연도 열렸다. 책을 파는 공간을 넘어 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연결의 공간이 바로 달팽이책방인 것이다.

달팽이책방이 좋아서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단골은 가까운 거리에 민들레글방을 열었다. 지금은 ‘달팽이 곁에 민들레’라고 해서 전국에서 찾는 골목책방 순례지가 되었다. ‘달팽이’와 ‘민들레’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기 동네에도 책이 있는 공간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현재 포항 북구의 그림책 카페 ‘트레져아일랜드’와 동네 헌 책방 ‘리본’, 남구의 북카페 ‘지금책방’이 영업 중이다.

출판사를 차린 사람들도 있는데, 포항 여남 해녀들의 이야기 ‘별따는 해녀’를 펴낸 ‘학교앞거북이’와 결혼이주여성들이 함께 매거진을 만드는 ‘포포포’가 그렇다. 달팽이책방을 드나드는 이들이 많아지자 인근 골목에는 특색 있는 식당과 디저트 카페, 공방, 아틀리에 등이 들어섰다.
 

곳곳에 한번 보면 잊히지 않는 이름의 가게들과 독특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간판들, 규모는 작지만 청년 창업자의 취향이 한껏 발휘된 인테리어가 사랑스러운 곳들이다. 가게 하나하나에 깃든 개성은 독특하지만 소박한 골목과 전혀 어긋나지는 않는다. 놀랍게도 효자시장 골목길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가게는 대한민국 어느 골목에나 있는 편의점이다. 지나치게 큰 간판과 밝은 조명 탓에 너무 튄다고나 할까. 그에 비해 담박한 간판을 내건 가게들은 특색 있는 메뉴로 사람을 모은다. 수제버거와 라멘, 문어튀김, 쌀국수, 가정초밥, 낫토 통명란 덮밥, 대창덮밥 등은 젊은 입맛을 사로잡았다. 서두르지 않는다면 재료 소진으로 허탕 치기 일쑤고 서두른다 해도 식사시간에는 줄을 서야 한다. 개성 있는 상점들이 사람을 끌어들이고 동네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 찾는 이 많아지면서 임대로 부담도 커져

사람들이 골목을 좋아하는 이유는 유난스럽지 않으면서 사람 사는 냄새가 나기 때문이 아닐까. 골목 구석구석에 겹겹이 쌓인 시간이 빛나고 혼자 걸어도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 아닐는지. 반면 이름난 골목은 어떤가. 관광객들로 번잡하고 시끄러워 정작 주민은 문을 걸어 잠그고 지낸다. 고즈넉한 골목을 선호하면서도 골목상권 활성화라는 미명하에 골목의 정체성을 간과한 것이다.

골목길이 주목받으면서 도시 공간에 즐거운 변화가 일어나고 풍요로워지는 건 좋지만 동시에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소비자들에게 일회용품처럼 소모될 위험도 커졌다. 달팽이책방의 책방지기도 서점에서 찰칵찰칵 소리 내며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린 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이들에게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혹여나 조용히 책읽기를 즐기는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몰리면서 임대료 부담도 덩달아 커졌다. 대부분 젊은 취향의 가게들은 2년 단위로 사는 세입자라고 했다. 재계약 기간이 되면 임대료가 오르지 않을까 공포에 가까운 불안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책방지기가 쓴 글을 통해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효자시장 앞
효자시장 앞

□ 골목길 이름에 대한 진지한 고민 필요해

효자시장 골목길이 2, 3년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배경에는 ‘효리단길’이라는 이름도 한몫을 한다. 효자시장과 효자교회 사이의 이 골목길은 예전에 빈 점포가 많았다. 후미진 골목이 예쁜 이름을 얻은 데다 사람들로 북적대기까지 하니 이름이 효자다 싶지만 덥석 받아들기에는 좀 더 생각이 필요하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리단길’이라는 명칭이 붙은 상권은 2018년 9월 기준으로 20개나 된다. 서울의 경리단길·망리단길·송리단길, 부산의 해리단길·망미단길·범리단길·전리단길·초리단길, 경주의 황리단길, 문경의 문리단길, 대구 봉리단길 등 일일이 언급하기에 숨이 찰 정도다. 이 가운데 몇 곳은 여전히 건재하고 또 몇 곳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을 것이다. 유행에 편승하더라도 골목이 좋아진다면야 무슨 고민일까. 문제는 ‘○리단길’이라고 호명되었을 때 떠올리게 되는 어떤 풍경이 있다는 것이다. 소위 뜨는 골목에 편승해 홍보하게 되면 골목은 부풀려지기 쉽고 무엇보다 골목 자체의 매력을 담을 수 없다. 처음엔 독특한 자기만의 분위기가 있는 가게들이 형성되지만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자들이 몰려들면서 결국 잊혀져버린 골목의 스토리는 이미 차고도 넘친다.

그렇기에 김주일 한동대 교수는 “○리단길 현상의 이면에는 새로운 시대의 도시문화라는 긍정과 의미성이 결여된 유행에 불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한다.”고 말한다. 결국 일시적인 유행이나 복제품이 되지 않으려면 그 속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 사람냄새 나는 효자시장

효자시장 골목길을 어디서 어디까지라고 말할 수는 없다. 흔한 안내판 하나 없고 자세히 알고 싶어도 문의할만한 행정기관 담당부서도 없다. 다만, 이 길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철길숲을 걷다보면 만나는 골목, 계속 걷다보면 효자시장에 이르는 골목으로 통한다.

효자시장은 포항에서 죽도시장 다음으로 큰 시장이다. 달팽이책방 책방지기가 자란 동네이며 민들레 글방지기가 하루일과를 마치면 들러서 장을 보는 곳이다. 청년 창업가들이 재료를 구입하는 단골가게가 즐비한 곳이며 상가가 무려 220여 개나 되는 없는 게 없는 곳이다. 전국의 전통시장이 그렇듯 효자시장도 침체기를 겪었지만 2013년 상인회를 조직하고 상인대학을 개설했으며 다양한 정부사업을 따내며 혁신을 꾀했다. 상인회 소속 상인만 250여 명으로 전통시장 가운데도 혈기왕성한 젊은 시장인 셈이다. 시장 상인들은 골목길에서 일어나는 최근의 변화를 반갑게 맞는다.
 

배은정 방송작가, TBC·포항MBC·경북교통방송에서 활동중.
배은정 방송작가, TBC·포항MBC·경북교통방송에서 활동중.

물론 젊은 취향의 가게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그에 대해 효자시장상인회 손상용 초대 회장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발전해가고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지니 고객을 더 모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골목에 사람이 모이면 시장도 좋고, 시장이 잘 되면 골목상권에도 득이란 얘기다.

이제 관건은 속도다. 속도에 집착하다보면 골목은 정체성을 잃는다. 더디게 간다고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다. 역사와 이야기가 있고 취향이 확실한 공간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모두가 알고 있는 골목을 찾아가는 시대는 지났다. 어디에나 있는 체인점이나 인테리어만 번듯한 카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효자시장 골목길의 재미있는 변화가 지속되기를, 그래서 포항에도 매력 있는 골목길 하나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글/배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