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동덕여대 교수·교양대학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

“불효자는 옵니다.”

지난 추석 무렵 지방 국도변 곳곳에 붙어 있던 플래카드의 글귀이다. 강원도 정선군의 한 공무원이 코로나 극복을 위해 추석 연휴 기간에 귀성 방문을 자제하자는 뜻으로 가요 ‘불효자는 웁니다’의 제목을 패러디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불효자는 웁니다’는 작곡가 이재호가 곡을 만들고 1940년에 가수 진방남이 부른 노래이다. 진방남은 ‘단장의 미아리고개’, ‘울고 넘는 박달재’, ‘아빠의 청춘’, ‘무너진 사랑탑’, ‘산장의 여인’, ‘소양강 처녀’ 등 우리 귀에 익숙한 노랫말을 지은 작사가 반야월이 가수로 활동하던 때에 부르던 예명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진방남, 아니 반야월이 작사한 것은 아니고 ‘땐사(댄서)의 순정’, ‘찔레꽃’의 작사가 김영일의 작품이다. 작곡, 작사, 가수 모두 당대의 대단한 분들이 참여해 만든 노래 ‘불효자는 웁니다’가 모음 단 하나가 뒤집힌 채 80년만에 소환되었다. 이를 코로나 덕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코로나의 힘을 새삼 느끼게 한 플래카드 패러디 문구임엔 분명하다.

우리의 농어촌은 어르신들 세상이다. 80-90대 노인분들이 논 매고 밭 갈며, 60-70대 어르신들은 경로당에서 어린애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기력이 좋다 해도 연세 드신 노인들에게 코로나19는 매우 치명적인 질병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의 2020년 8월 통계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로 인한 75-84세의 입원률은 18-29세와 비교할 때 8배 이상이고 치명률(사망률)은 220배 이상이며, 85세 이상 노인의 입원률은 13배 이상이고 치명률은 630배 이상이라고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평소에는 전화 한 통 드리지 않고 발길은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다가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2020년의 추석에 찾아온다고 하는 자식은 불효자 취급을 받을 수밖에.

2020년 추석에 고향을 찾은 자녀들을 생각하면 이솝 우화 중 한 이야기로 들었던 청개구리 우화가 떠오른다.(실제로 이솝 우화에 청개구리 이야기는 없다. 어미 개구리의 말에 언제나 반대로만 하는 아들 청개구리에게 언덕이 아닌 강가에 묻어달라고 마지막 유언을 한 어미 개구리의 이야기는 동양의 우화이다.) 그렇다고 추석에 찾아온 자식들을 싸잡아 청개구리 불효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코로나가 아무리 엄중하다 할지라도 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분들은 누가 뭐라 해도 고향을 방문하고 부모님을 찾아 뵈어야 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분들은 더욱 조심스레 철저히 방역 원칙을 지키며 고향 나들이를 하였으리라.

불효자인 나도 지난 주간에 경북 의성과 안동을 다녀왔다. 살아계시는 부모님을 뵈러 간 것이 아니라 22년 전에 돌아가셔서 선산에 잠들어계시는 아버님을 국립괴산호국원에 옮겨 모시기 위해서였다.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는 분이니 코로나의 위험은 드리지 않았다.

패러디야 어느 나라 말에서도 가능하겠지만, 우리말은 이렇게 재미있고 곰살맞기까지 하다.

이 가을 청개구리 불효자는 왔고, 불효자는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