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 강정.

남편은 몇 년째 대장내시경을 했다. 검사를 할 때마다 암탉이 알 품듯 노른자가 올망졸망 붙어 있었다. 매달린 혹이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고는 있으나, 무슨 자신감인지 이번 검사가 마지막이 될 거라며 호언장담했다. 검사를 앞두고 자신만만해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가벼웠다.

아침에 흰죽을 끓였다. 내시경 검사 전날의 식사는 묽은 죽이었다. 쌀을 씻어 죽을 쑤는데 팔이 저렸다. 꾀가 살살 났다. 네이버양에게 물으니 간단하게 대안을 제시했다. 밥을 지은 후에 쌀뜨물을 부어 다시 끓였더니 시간도 단축되고 팔도 아프지 않았다. 일은 닥치면 요령이 생기는 모양이다.

예전, 몸져누운 엄마는 매일 죽을 먹었다. 엄마의 입맛을 살펴가며 올케가 끓이는 죽은 아주 다양했다. 매 끼마다 죽을 차리는 것이 대단해서 고맙다고 하자 올케는 자꾸 하다보면 어렵지가 않다고 했다. 갑자기 흰죽 하나 끓이면서 쩔쩔매는 내가 우스웠다. 남편은 검사 전날 저녁부터 병원에서 받아 온 물약만을 마셨다. 저녁상 차릴 일이 없으니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다. 나는 할 일이 없으면 깨를 볶는 버릇이 있다. 미뤄두었던 참깨부터 볶았다. 톡톡 튀는 참깨 냄새로 집안이 온통 고소했다. 절반은 깨소금으로 찧었다. 깨소금 냄새에 코가 실룩거리면서 기분이 들떴다. 이왕에 궁중 팬 열기가 남았으니 들깨도 볶았다. 깨들이 정신없이 춤을 추었다.

들깨를 볶다가 떡 본 김에 깨강정이 생각났다. 들깨에 노란 잣을 한줌 넣고 설탕과 조청으로 버무렸다. 그것을 쟁반에 담아 소주병으로 납작하게 굴렸다. 네모, 마름모꼴로 쓱쓱 썰었다. 한 놈을 깨물어보니 입에 짝 달라붙었다. 맛도 모양도 앙증스러워 내심 뿌듯했다.

그때였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던 남편이 비틀거리며 주방으로 나왔다. 소복이 담아놓은 깨강정을 보더니 “해도 해도 너무하다. 독사 독 올리느냐.” 며 화를 벌컥 냈다. 유난히 깨강정을 좋아하는 남편이기에 앞에 놓인 강정을 보자마자 고꾸라질듯 휘청거렸다. 죽 한 그릇으로 수십 번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사람 앞에서 아이쿠, 싶었다. 더군다나 깨 같은 씨앗 종류는 금식 중에서도 절대 먹지 말아야하는 음식이 아니던가.

눈치가 빠르면 절간에서도 젓국을 얻어먹는다고 했다. 대장내시경 준비로 물만 먹고 있는 사람 앞에서 눈치도 없이 집안에 있는 깨란 깨는 다 꺼내어 볶았으니, 그것도 모자라 깨강정까지 만들었으니, 이일을 어쩌랴. 눈치 없는 것도 큰 병이다.

내가 생각해도 이번 일은 해도 해도 너무했다.

/최경하(경주시 현곡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