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정 민

하루를 찍어낸다

조각칼이 지나간 곳에 산이 솟는다

칼끝이 지날 때마다 길이 생기고

사람이 태어나고 꽃이 핀다

내가 원하는 건

아직 귀가하지 않은 누군가의

불 꺼진 창문을 돋을새김하는 것

찢어질 듯 얇은 달빛 한 겹 스며든 지상

하얗게 떠오른다

강가의 물억새가 바람 부는 쪽으로 쓰러진다

목판 위에 올려놓은 하루 한 장

먹물과 먹물 사이에서 불빛이 새어나온다

아주 조금 희미해져 있거나

몰래 흠집을 가지고 있는

하루, 온통 칼자국 투성이다

깊게 패인 곳이 더 선명하다

온종일 조각칼로 산, 길, 사람, 꽃을 새겨 일으켜 세우는 일을 하고 있음을 본다. 목판화를 하며 느낀 것들을 서정적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제목인 ‘모노타이프’는 단 한 장의 종이에만 판화를 찍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귀가하지 않은 외로운 누군가의 저녁을 위해 따뜻한 배려와 사랑이 스민 칼끝, 따스한 시인의 눈빛을 본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