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이주형
산자연중학교 교감

도로를 따라 가을이 들기 시작한 은행나무를 보면 속절없음이라는 단어만 생각난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속절없이 떨어지는 은행잎을 따라 필자의 마음도 속절없이 흩날린다.

자연이 그리는 계절 모습에 필자가 할 수 있는 감탄사는 “벌써”뿐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에만 하더라도 더디게 가는 시간에 원망가(怨望歌)만 불렀다. 원망은 허망만 낳았다. 허망의 덫은 생각을 앗아갔다. 코로나19에 멈춘 세계처럼 필자의 생각도 완전히 멈춰버린 요즘이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가위눌림에 모든 감각은 기능을 잃었다.

무감각의 덫에 갇힌 것은 세상도 마찬가지다.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려진 물건처럼 지금 사회는 정부가 코딩해 놓은 대로 움직여만 하는 인형 사회다. 정부 지침에서 조금이라도 의문을 가지면 바로 코로나19 전파자로 낙인찍힌다. 그리고 골수 정부 지지자들로부터 무차별 온라인 폭격을 당한다. 반문을 떠나 의문조차 가질 수 없는 사회가 지금 사회다.

2020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무한 재방송을 하는 인형극 같다. 주제는 코로나19 극복, 제목은 코로나19 공포 정치! 유행어는 “앞으로 2주가 최대 고비입니다.”이다. 인형 조종사는 성급한 일반화 오류의 쾌락에 중독된 정치인! 극의 특징은 조종 대상인 인형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양치기 인형극에 신물 난 대다수 국민은 이제 스스로 자기 일을 한다.

세상일의 절대 진리는 완전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많은 국민이 알아서 자기 일을 해도 절대 못 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교육계이다. 지침을 어기면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교육계이다. 웃기는 것은 교육 목표가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 인재 육성”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지금 우리 교육의 실질 목표가 학생을 시험용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렸다. 아무리 등교 제한 조치를 하더라도 학교 시험만큼은 반드시 봐야 하는 것이 이 나라 교육이다. 배운 것도 없이 시험을 쳐야 하는 학생들의 처지는 교사들이 알 바 아니다. 그들은 당당히 말한다, 위에서 하라고 하니까!

안 될 줄 알면서도 제안해 본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학교 시험만큼은 제발 없애자고, 아니면 횟수만이라도 줄이자고. 학생들은 그 시험을 “설문조사 시험”이라고 한다.

수능도 무의미한 학생들에게 대학교 원서 접수가 끝난 후에 치르는 학교 시험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학생들은 하기 싫은 설문조사를 하듯이 문제도 읽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번호를 찍는다. 과연 이런 시험이 시험으로서 의미가 있을까! 교사들조차 의미를 찾지 못하는 시험 대신 차라리 졸업을 앞둔 학생들을 위한 진로 캠프를 하면 안 될까! 차라리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를 자유학기제로 하면 어떨까!

그래도 만약 시험 점수가 필요하다면 모든 학생을 수능에 응시하게 해서 그 점수를 고등학교 마지막 내신 점수로 하면 어떨까! 그러면 최소한 수능에 대한 효용성이라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속절없는 필자의 생각에 찬 이슬만 내리려는 한로(寒露)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