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문화의 상징과 공간
(9)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

꿈틀로 장터

도시는 성장하는 반면 쇠락한다. 생성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소멸되기도 하는 것. 도시화 과정에서 공간의 권력 변화는 중심에서 교외로 급속히 이동되고 재편되었다.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는 그 과정을 답습한 곳이다. 2006년 포항시청사가 대잠동으로 이전하면서 대부분의 상권이 동시에 이전되었고, 남은 상권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도심 기능이 사라지면서 원도심은 구도심이 되었다. 사람이 떠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오랜 시간의 가치를 묵혀둔 공간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공간의 소멸은 존재의 부재 그 이상이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의 장면이거나, 두고두고 회자될 찬란한 삶의 한 조각일지도 모를 터무니의 상실이다. 공간을 통해서만 저장 가능한 사람들의 추억과 기억은 공감의 기제로 작동한다. 그 기제가 사라지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도 허물어진다. 기억의 재생이 멈추고 공동체가 상실된 공간의 소멸 속에 지금 여기, 현재성만 있을 뿐 장밋빛 미래에 대한 기대도 멈춘다.
 

포항시 북구 중앙로 298번지 일대 구도심
구멍난 공실에 예술가 둥지 틀어 ‘꿈틀로’ 탄생
골목 곳곳 다양한 예술활동으로 사람들 모여
1960년대 문화계 인사들의 사랑방 ‘청포도 다방’
2020년 시공간 건너 새 문화흐름 이어가는 등
과거-현재-미래 연결 시민의 공간으로 발돋움

□ 구도심이 되고 만 원도심

포항시 북구 중앙로 298번지 일대, 지금 꿈틀로라 불리는 곳이다. 행정구역상 ‘중앙’이라는 호칭이 붙은 만큼 근대적 공간 배치에서 중심을 차지했던 곳이다. 행정기관이 밀집하고 그 덕에 공생하는 행정사와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위한 맛집과 각종 상점, 호텔과 유흥업소들이 콜라주처럼 어우러져 아우라를 뽐내던 도시의 심장이었던 셈이다. 적어도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뒤. 2016년 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갈 즈음, 꿈틀로의 텅 빈 거리를 마치 격동의 시기를 지내온 것만 같은 시절의 민낯으로 대면했다. 청춘의 밤을 뜨겁게 노래했던 주점과 음악다방, 예쁜 옷가게, 극장이 있던 곳이 사라지거나 덩그러니 공실로 남겨져 있었다. 서양식 외관의 모텔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슬레이트 지붕,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건물 바로 옆 노포(老鋪), 대책 없이 방치된 빈 상가, 거미줄처럼 어지럽게 얽힌 전신줄과 폐간판 사이로 창백한 회색빛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 혼종된 풍경을 스펙터클이라 해야 할지, 골목이 주는 이질적 형상들이 파편적으로 떠돌았다.

포항시는 당시 중앙로 일대 도심 공동화에 대한 자구책을 고민하던 중이었다. 생명력을 잃어버린 땅에 딱히 뾰족한 묘수가 많지 않았던 상황이었고, 여러 차례 벤치마킹과 사례연구 끝에 몇몇 도시에서 ‘문화적’ 방식으로 도심을 바꾸어 놓은 모델을 옮겨 보기로 했다. 한때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였다가 그 기능이 점차 외연으로 확장되면서 공동화(空洞化)가 진행된 곳을 다시 움직일 수 있는 묘안은 ‘예술로 한번 해보자’는 것이었다. 골목 곳곳 구멍 난 공실에 공공(포항시)이 예술가들에게 임대비 지원방식의 창작 지원을 통해 조금이나마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라는 기대 반 우려 반으로 21개의 개인과 그룹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고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라는 이름으로 문화재생사업이 시작되었다. 중앙로 298 거리는 그렇게 새 간판을 달고 신장개업을 했다. 분명히 열려있는 길이건만 사람의 물꼬가 막힌 길을 뚫기 위해 공공의 역할이 작동된 것이다.

□ 도심 공동화 해결책으로 문화재생사업 시작돼

꿈틀로 프로젝트를 시작할 2016년 당시에는 점포 공실률이 30~40%에 육박할 만큼 공동화가 심각했다. 동아세탁소, 할매떡볶이, 산촌식당, 비목쌈밥, 세대세탁소, 옛 포항이용소 등 30~40여 년 자리를 지켜온 노포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꿈틀로는 정식 행정구역명이 아니다 보니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만 4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꿈틀로, 거가 어데라?” 라고 되물을 만큼 ‘아카데미 골목’으로 더 알려져 있다. 혹여라도 이후 30년쯤 훌쩍 지나 오히려 “아카데미 거리? 거가 어데라?” 라고 묻는 시민들에게 화답해 줄 수 있는 곰삭은 서사가 되기엔 발효가 더 필요하다.

그래서 현재 꿈틀로의 시작점은 ‘옛 아카데미 골목’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갈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나 상상이지만, 아카데미극장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북적이고 다양한 상권이 살아 움직이던 시절로 날아갈 수 있다면, 그 시점에서 지금의 꿈틀로를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공간, 다른 이름이 될 수밖에 없는 시대의 우울 속에 도시의 성장사가 함축돼 있다.

아카데미극장은 사라졌지만, 1973년부터 30년간 극장 간판 그림을 그린 안경모 씨는 아카데미의 산 증인으로 남아있다. 이외에도 켜켜이 쌓인 시공간의 주름은 꿈틀로 곳곳에 내재돼 있다. 1987년부터 오대산 나물밥을 팔고 있는 산촌식당은 일제강점기 은행 터였고, 그 인근에 포항 최초의 극장 영일좌(迎日座)가 있었다. 이는 문화적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원도심 서사 발굴 과정에서 발굴한 사실이다. 폐쇄지적도를 통해 거슬러 올라간 꿈틀로는 흙에서 터전으로 이어온 유구한 삶의 궤적이다.

그런 의미로 꿈틀로는 쇠락한 상실의 공간이 아니다. 공간은 면적과 외형적 부피로만 읽힐 수 없다. 오랜 시간 축적돼 온 기억을 꺼내 닦고 쓰다듬다 보면 이게 보물인가 싶다. 시대를 휩쓸고 있는 레트로 열풍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과거의 영화가 다하고 낡고 허물어져야 보석이 되는 것도 있다. 지금의 포항을 반추하는 공간으로서 꿈틀로는 여전히 생물적 공간이다. 생물적 삶터의 뿌리는 분절되고 잘려나간 몸통에서 새롭게 생성되기도 한다. 꿈틀로의 명소 청포도다방은 분절된 시공간을 건너 새롭게 소환됨으로써 동시대 문화적 명맥을 이어가는 공간이다.
 

부엉이파출소(중앙파출소) 앞 댄스 공연
부엉이파출소(중앙파출소) 앞 댄스 공연

□ 포항을 반추하는 공간, 꿈틀로

청포도다방은 이육사의 ‘청포도’가 영일만 삼륜포도원을 배경으로 씌어졌다는 탄생 배경을 모태로 박영달 선생이 중앙상가 행텐캐주얼 자리에 개업한 음악다방이다. 담소를 나누는 공간을 넘어 문화계 인사들의 사랑방 기능을 하는 담론의 장이자 작품 전시장이기도 했다. 그러한 활동을 밑거름으로 1976년 문화예술단체 ‘흐름회’가 탄생되었는데, ‘포항시사’에서는 이 시기를 ‘청포도 살롱시대’라 명명했다.

1960년대 청포도다방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지만 낡은 점포를 다시 살린 2020년의 청포도다방도 의미 있는 문화 담론을 생성하고 있다. 원로들의 강의를 통해 근현대 포항 문화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비롯해 북토크, 작품 전시회 등 다양한 인문·예술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문화경작소’라는 별칭에서 청포도다방의 공간적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오래되었다고 우월할 수 없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이내 낡은 것으로 치부되는 세상이다. 꿈틀로는 새로운 흐름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26개의 예술가 창작공간을 비롯해 청포도다방, 문화공판장, 청년문화 편집숍 등 소단위 다거점 형태의 문화공간이 오밀조밀 연결망을 형성하고 있다. 분식집과 이용소, 미장원, 식당이 주류를 이루던 골목이 바닥화와 벽화, 공공조형물, 셉테드(CPTED, 범죄예방환경설계) 기법의 조명이 들어서면서 시각적으로도 변신 중이다. 이와 함께 청년 기획자들의 유입으로 신구 조화가 이루는 세대 연결이 이루어지고 있다. 청년들은 예술가들과 함께 기획을 하고 공간을 새롭게 창조한다. 이는 공간을 판매하는 장소 마케팅과는 별개의 지점이다. 자신의 이상을 분출하고 가치를 인정받는 곳으로서의 공간은 장소의 창조성을 순환시킨다. 순환의 연결고리는 주민과 예술가, 청년그룹이 함께 만들어 간다. 처음부터 장소적 가치를 살리는 일보다는 서로를 탐색하고 마음을 나누는 일에서부터 느슨한 연대가 만들어지고 공동체는 시작된다. 생태의 가치사슬처럼 공간의 생명력은 여러 갈래의 연결고리 속에서 만들어진 공동체를 통해서만 되살아난다. 그래서 우리는 공간의 바깥만을 봐서는 안 되고 내밀한 관계망 안으로 들어가 사람과 공간의 틈새를 무던히 메워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꿈틀로 안내 조형물
꿈틀로 안내 조형물

□ 다양한 인문·예술활동 펼쳐지는 청포도다방

밀물과 썰물의 교차처럼 낡은 것은 낡은 대로, 새것은 새것대로 어우러져 꿈틀로의 터무니가 만들어지고 있다. 매월 1회 ‘문화 반상회’라는 이름으로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예술가와 상인, 주민들이 도란도란 만나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신다. 공공이 엮어 준 프로그램 안에서 형성된 관계맺음이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에서 모든 길은 열리는 법이다.

그렇게 시작된 ‘문화 반상회’가 ‘문화 품앗이’로 진화하고 있다. 작가들이 여는 행사에 주민들이 협치하고, 주민들이 운영하는 상가에 작가들이 재능 기부를 한다. 공공이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자발적 학습동기를 만들어주는 것. 또 예술가들이 일방적으로 주민을 해바라기 하도록 하지 않는 것. 자세히 들여다봐야 알 수 있듯이 내밀한 관계맺음 속에서 공동체의 연대를 공고히 해나가고 있다.

4년의 시간이 흐른 꿈틀로의 일상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오랜 시간 굳게 닫혀있던 빈 점포가 지금은 새로운 업종으로 거의 채워져 있다. 건물의 낡음도, 어지럽게 널린 전선줄도 해결하지 못한 채. 낡은 건물에 페인트를 칠하고 보기 좋은 조형물이나 포토존을 설치하고, 대형 건물을 짓는 물리적 방식의 재생 활동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롯이 사람을 바라보고 그들의 손을 이끌어 내는 공동체 과정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꿈틀로는 모든 사람의 기억 속 길이기도 하고 새로운 창조성을 만들어 가야 할 열린 길이기도 하다. 공간의 과거에 집착해서도, 유행에 편승해 순식간에 인기몰이를 했다가 쇠락하는 외부자 중심의 공간이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더 빨리, 더 나은 골목으로 살아남기 위해 속도에 욕망하다 보면 주위의 구경거리가 될 것이고, 지금껏 새 삶의 터무니를 만들어 온 주민, 작가들의 삶터가 밀려나는 둥지내몰림이 올지도 모른다. 꿈틀로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된 통로다. 축적된 관계와 시간을 통해서 만나는 열림과 닫힘, 삶들의 ‘사이’이다. <사진/안성용>

글/황상해
포항문화재단 문화도시사업팀장 역임. 현재 문화공간 운영팀장으로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