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광화문 일대에 쳐진 물 샐 틈 없는 차벽(車壁) 설치물 장관을 바라보며 ‘대한민국 경찰은 세계적인 설치미술 그룹이 됐다’는 우스개가 생각났다. 우리 경찰은 현존하는 그 어떤 예술가도 할 수 없는 ‘재인 산성’이라는 제목의 설치미술 작품을 선보였다. 이명박 정권 때의 ‘명박 산성’ 실험과 박근혜 정권의 ‘근혜 산성’이라는 시행착오를 맹비난하면서 배워 완성한 새로운 버전의 산성이니 그 완벽성이야 두말할 나위가 있을까.

광화문 ‘재인 산성’을 외신들은 어떻게 볼까, 세계인들은 서울의 현실을 어떻게 해석할까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가장 훌륭한 장비가 마스크이고 그 다음으로 손 소독제, 에틸알코올 정도라는 건 지구촌의 상식이다. 거리 두기도 한 방안일 수는 있을 것인데, 기발한 수단인 ‘산성’이 신종 방역장치로 등장한 셈이다.

정권의 잘못을 비판하려는 모든 집회를 봉쇄하기 위해 수백 대의 경찰 버스로 광장을 틀어막고, 차량 시위마저 금지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과하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유원지·관광지는 내버려 두고, 굳이 광장만 다 틀어막고 행인들 모두를 검문 검색하는 일을 ‘방역’이라고 우기는 건 야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십 수백 대 차량이 사람을 가득 채우고 교통신호를 기다리거나 주차장에 몰리는 건 괜찮고, 깃발이나 현수막을 단 차량엔 단 1명만 타야 한단다. 그것도 일행이 9대를 넘기면 안 된다니, 이런 코미디가 어디 또 있을까. 그야말로 코로나19는 작금 문재인 정부의 정권 안보를 담당하는 으뜸 방패다.

정치 전략적인 차원에서 보면, 코로나19를 무기로 써먹는 문재인 정권의 용의주도함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그것도 실력’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야당은 도무지 마땅한 대안세력으로서의 미더움을 장만해 내놓지 못하고 있다. 치열한 투쟁도 안 보이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의지도 흐릿하다. 뭘 어쩌자는 심산인지 도통 모르겠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지금 이 정국 속에서 야당이 더불어민주당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과거 ‘명박 산성’과 ‘근혜 산성’ 때 했던 그들의 행태를 돌이켜보면 상상은 어렵지 않다. 방역이라는 변수가 다른 요소이긴 해도, 아마도 광화문에 둘러쳐진 경찰 버스 몇 대쯤은 부서지거나 불이 붙지 않았을까. 상황을 꿰뚫는 기발한 시위수단이 고안됐을 수도 있다.

국정감사장에서 국민의힘은 예상대로 전혀 맥을 못 춘다.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인 국회 안에서 절대다수인 여당은 불리한 증인신청을 모조리 거부하고 있다. 민주당의 전략에 제1야당은 고작 ‘야당 간사직 사퇴’ 같은 영양가 없는 저항 정도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 쳐진 ‘다수 횡포의 차벽’에 막힌 견제세력은 절멸 상태다. 완고한 ‘차벽’ 너머의 참담한 ‘맹탕’ 정치에 한숨이 절로 난다. 불임 정당의 초라한 몰골인 국민의힘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흔들리는 국운을 바로잡을 지혜, 열정이 조금이라도 있긴 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