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경기민요 12잡가" 보유자 이은자 명창

아직도 길을 걷다가 어디서 ‘소리’가 들리면 걸음을 멈춘다고 하는 이은자 명창.

민요경창대회에서 명창부 대통령상을 받은 이은자 명창을 만났다. 연구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장구를 앞에 놓고 연구생들에게 민요를 가르치는 중이었다.

‘백구야 날지 마라 너를 잡을 내 아니로다. 성상이 버리심에 너를 좇아 예 왔노라~.’ 물 흐르듯이 쉽게 가자는 멘트와 함께 명창이 창부타령 한 소절을 부르면 연구생들이 따라하는데, 한 소절의 실수로 전체를 망칠 수 있으니 집중하라고 주의를 준다. 구성진 마디마디를 연결해서 숨 쉴 곳에서 숨 쉬고 내릴 곳은 내려서 소리를 묶고 눌러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판소리가 뱃속에서

한을 끌어올려 긴 얘기를

엮어나가는 것이라면

경기민요는 민중의 입으로

구전되어온 노래이며

소리를 굴리고 던지듯이

말하는 소박한 음악이죠.

말을 던지는 부분에

비성이 들어가면서

콧소리가 되기 전에

얼른 소리를 놓아야 하는데

숙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 판소리와 경기민요가 어떻게 달라요?

판소리가 뱃속에서 한을 끌어올려 긴 얘기를 엮어나가는 것이라면 경기민요는 민중들의 입으로 구전되어온 노래이며, 소리를 굴리고 던지듯이 말하는 소박한 음악이라는 점이 다르다고 한다. 말을 던지는 부분에 비성이 들어가면 콧소리가 되기 전에 얼른 소리를 놓아야 하는데 숙련의 과정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란다.

- 자기만의 소리를 찾은 게 언제예요?

불과 십여 년쯤 되었다며, 이은자 명창은 인간의 음성이 성대에서 결정되고 식도의 입구인 후두에서 생성된다고 일러주신다. 소리의 형상을 기호로 표현하면 동그라미가 된다. 그이는 항상 소리를 둥글게 하려고 애쓴다. 소리가 공명강을 거쳐 부드럽게 울려 퍼지도록 둥근 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래서인지 그이의 민요는 구르는 듯 부드럽고 감칠맛이 있다.

- 민요가 무엇일까요?

민요는 민중들의 삶을 소리로 표현한 음악이며, 소리로 삶을 전하는 민중음악이다. 일찍이 민요는 힘든 농사일부터 고기잡이는 물론이고, 사랑의 이별을 노래하며 우리네 삶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은자 명창은 남다른 걸 좋아해서 민요를 주어진 대로 부르지 않고 편곡해서 부르기도 했다. 전통을 허물어뜨린다는 욕을 먹기도 했지만 그 별스러운 각색이 창극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새로운 것이 묵은 것 위에 생성된다고 볼 때, 새로운 걸 추구하는 욕구 강한 이단아가 항상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데 앞장서게 마련이다.

- 어째서 판소리가 아니고 경기민요였어요?

이은자 명창은 경기민요가 자신에게 맞더라고 했다. 민요는 민중들의 삶을 반영하고 표현하기에 적합한 음악이기도 하지만, 짧으면서도 빠른 시간에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고 금방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판소리가 겹겹의 한을 담은 음악이라면 경기민요는 민중의 애환에 노랫가락의 흥겨움을 더한 것이 다른 점이랄까.

- 어떤 곡으로 대통령상을 받으셨어요?

유산가로 예선을 통과하고 제비가로 본선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며, 명창대회에서 불렀다는 ‘유산가’ 한 대목을 부른다. “화란춘성(花爛春城)하고 만화방창(萬化方暢)이라. 때 좋다 벗님네야 산천(山川) 죽장망혜(竹杖芒鞋) 단표자(單瓢子)로 천리 강산을 들어가니….” ‘유산가’에 이어 12잡가 중에서 가장 긴 소리라는 ‘적벽가’를 곁들여주니, 둘러앉아 있던 제자들도 목소리를 맞춘다.

민중의 삶을 전하는 경기민요 12잡가를 직접 듣고 있으려니 ‘아! 저게 바로 우리 민요구나.’ 하는 감동이 절로 우러나왔다.

명창의 소리를 듣는 동안 영화 ‘서편제’에서 소리품을 팔던 유봉과 그의 딸 송화가 소리를 하며 소릿재를 넘어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에 한(恨)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화자의 어미가 소리꾼인 의붓아비를 만난 후 딸을 낳다 죽는다. 어미가 죽고 아들은 의붓아비 곁을 떠난다. 어른이 되어 소릿재를 찾은 그는 주막 여자에게서 소리꾼 아비가 잠든 딸의 눈에 청강수를 넣어서 멀게 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좋은 소리를 가꾸자면 소리를 지니는 사람 가슴에다 말 못할 한을 심어줘야 하는가 보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사람의 한은 그렇게 심어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며,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긴긴 세월 동안 먼지처럼 쌓여 생기는 거라고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사는 것이 한을 쌓는 일이고 한을 쌓는 것이 사는 것이라고. 만약 딸이 아비를 용서하지 못했다면 그건 원한이지 소리를 위한 한은 될 수 없을 거라며, 아마도 그 아비는 소리보다 딸이 당신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해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고.

12잡가가 민중의 낮은 소리를 대변하며 외세에 시달려온 우리 민족을 위로해 주었듯이, 판소리를 비롯한 한국의 모든 민요가 한에서 비롯되는 가락이다. 사설이 길다고 하여 ‘긴 잡가’로 불리는 열두 곡의 잡가는 ‘유산가, 제비가, 소춘향가, 십장가, 적벽가, 출인가, 선유가, 방물가, 집장가, 형장가, 평양가, 달거리’까지 이름만으로도 곡절 많은 인생 열두 고개의 진미가 한자리에 모인 느낌이다.

이은자 명창이 경기민요를 시작한 것은 서른 즈음이었다. 결혼 직후, 경기민요를 배우기 위해 서울까지 새마을열차와 비행기를 타고 다녔다.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며 경기민요를 안 배우면 죽을 것 같다고 했다.

경기민요 예능보유자이신 이춘희 선생님께 민요 창극을 배우며 경상도 사투리로 각색한 ‘이춘풍전’을 무대에 올렸다. 당시 열정적으로 해냈던 창극은 ‘이춘풍전’ ‘미얄할미뎐’ ‘달구벌 효자원님’ ‘삼정골의 전설’ 네 작품이었다. 그중에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35호 효자 ‘강순항 정려각’ 을 토대로 각색한 ‘달구벌 효자원님’이 가장 기억이 남는 작품이다.

열 살 무렵에 풍물놀이 명인이신 이정자 선생님을 만났다. 설장고, 오고무, 무용을 익히며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선생님을 따라 국악공연에 참여했다. 무용복을 마련하지 못한 명창에게 선생님이 옷을 한 벌 해주셨는데 그 감동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더라고 한다.

 

열 살 무렵에 풍물놀이 명인 이정자 선생과 만나

초등 6학년때부터 공연 참여하며 국악과 인연

경기민요 시작은 결혼 직후인 서른 즈음부터

아이 맡기고 서울 오가며 익힌 혹독한 배움의 길

목수술까지 견디며 십여년 전 자기만의 소리 찾아

경기민요 예능보유자 이춘희 선생에 민요창극 사사

경상도 사투리 각색 '이춘풍전' 등 네작품 무대 올려

“경기민요 12잡가로 구성한 단독공연 보여주고파”

- 발성연습을 어떻게 하셨어요?

젊은 객기로 목을 아끼지 않고 무작정 내지르다 목을 다쳐 수술까지 했다. 소리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아픔이지만 한 번 목을 다치고 나면 소리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목이 아플 때는 쉬는 것보다 좋은 약이 없어서 푹 쉬며 소리가 다시 흘러나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과음 과식을 삼가고 충분한 수면에 더하여 입안을 항상 청결하게 하며, 소리를 하기 전에는 음식물 섭취도 삼간다. ㅅ의 발음에 쇳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한다며, 무엇보다도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 대통령상을 받으셨는데, 감회가 새로웠겠어요.

나 이런 사람이라고, 상이 대신해서 말해주는 것이 너무 고마워요.

인정받는다는 건 오랜 세월을 소리에 묻혀 살아온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니 기쁘고말고. 고희를 수 년 앞둔 나이여서 이쯤 되면 이은자 명창에게도 노년에 대한 계획이 있을 법하다.

- 노년을 어떻게 보내실지.

나이가 들면 자신만의 전수관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논다는 생각으로 살고 싶다고 한다. 남은 바람이 있다면 경기민요 12잡가 중 몇 곡을 선정해서 ‘이은자 소리길’이라는 타이틀로 단독 공연을 하는 것인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소리 중심의 공연이 될 것이라고 한다.

- 갑작스런 인터뷰로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셨을 텐데, 어떤 마음이세요?

광대는 죽는 날까지 광대라고 한다. 광대는 제 속에 있는 열정의 끼를 죄다 뱉어내고 빈 껍질이 되어서 떠난다. 이은자 명창은 소리를 하는 동안 자기 속에 있는 광기를 끄집어내는 느낌이었다며 길을 걷다가도 소리가 들리면 걸음을 멈춘다고 한다. 소리로 전해지는 광대의 삶에 감사를 바친다.

- 여러 인연들이 나를 키웠어요.

故 안비취 선생님, 전숙희 선생님, 이춘희 선생님, 가야금 최금란 선생님, 가야금 병창 경주 故 장월중순 선생님, 故 임이조 선생님까지 여러 선생님을 모시며 알게 된 것은 명창을 만들어내기 위해 온 우주가 돕는다는 것이었다. 일평생 노래로 시조를 읊고 산 이은자 명창의 얘기를 들으며 민요는 들을수록 물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노랫가락에 실은 시가 민요로 환생하는 순간 소리는 살아 있는 물이 된다. 물이 되어 흐른다.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