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br>동덕여대 교수
이재현
동덕여대 교수

실은 나는 남진도 나훈아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때론 간드러지고 때론 끈적한, 늘어지고 휘감기고 꺾이는 트로트라는 장르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트로트 붐이 다시 일고 있지만 내 음악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우연히 돌린 채널에서 나훈아의 노래를 들었을 때 심드렁할 수밖에.

그런데, 다시보기 서비스조차 없다고 너스레를 떨던 방송국이 불과 사흘만에 급편성한 그의 공연 재방송에서 나는 그와 눈이 마주쳤고 그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세월의 곰팡이 앉은 된장 냄새가 꼬리꼬리해도 찌개를 끓였을 때 그 감칠 맛에 숟가락을 담그지 않을 수 없고, 시큼한 김치 냄새가 유쾌하지 못한 자극을 준다 해도 그 시원한 맛에 젓가락을 놓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 내가 어느새 늙어 버렸나?

딸아이 말로는 BTS에 꽂혀 있는 20대 젊은 대학생들이 ‘테스형’을 부르고 있단다. 그것도 방송이 끝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다. ‘훈아 형’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테스형’의 노랫말에서 나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에 관한 그 어떤 울림도 느낄 수 없었다. 내 철학의 부재 또는 부족 탓일까? 그러니 해석은 유시민과 진중권 또는 언론에 말글을 펼쳐낼 그 많은 인플루 ‘언사(彦士·재능과 덕망이 뛰어난 선비)’들에게 맡기련다. 아무튼, 2500년 전 소크라테스를 2020년 코로나 시국에 형으로 소환했다는 사실만으로 생뚱맞은 나훈아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번 콘서트는 2020 트롯어워즈의 6관왕 임영웅도, 트롯 백년 가수상을 받은 장윤정도 하기 힘든, 연륜에서 우러나는 맛나고 다양한 포맷의 공연이었다. 이런 무대에서 노래한다는 걸 1년 전엔 생각조차 못했겠지만, 그는 언택트 공연의 힘을 보여주었다. 제주도민과 강원도민, LA 교민과 이름도 생소한 짐바브웨의 교포까지 한 자리에 모아 흥을 나눌 수 있게 한 것은 그가 펼친 랜선 콘서트의 힘이었다. 랜선을 빌려 나훈아는 움츠러든 남성의 기를 살려주려 했고 한반도를 훌쩍 뛰어넘어 세계에 흩어진 남녀노소 한국인들을 들었다놓았다 했다. 코로나는 처음에 기획했던 대규모 오프라인 공연을 접도록 했지만 오히려 성공적인 반전(反轉) 콘서트를 이루어냈다.

콘서트 중간중간에 그가 했던 말에 대해 시끌시끌 말이 많다. 여도 야도 아전인수격으로 받아들이는데 제발 유치하게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뛰어난 예인이지만 보통 생각을 가진 그냥 보통 시민의 덕담 정도로 여기면 어떨까?

세월의 무게도 무겁고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도 엄청나게 무거운데 훈장을 달면 그 무게를 어떻게 견디냐며 훈장을 사양했다고 말하였지만 세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노래를 펼쳐낸 모습을 보니 훈장을 주렁주렁 달아도 끄떡없을 것같다.

힘들고 지친 사람들 마음속 색깔, 코로나 블루를 잠시 동안이었을지언정 이 가을 스카이블루로 바꿔주려 했던 ‘훈아 형’에게 훈장까지는 몰라도 박수를 한껏 쳐줄 만하지 않은가? 스스로를 흘러가는 유행가 가수라고 하면서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눌러 터뜨리고 희망의 빛, ‘대한민국어게인’을 끌어올리려 했다니 뭐 예술 훈장 하나쯤도 괜찮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