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룡사의 일주문을 대신하는 산문. 관룡사는 경남 창녕군 창녕읍 화왕산 관룡사길 171에 위치해 있다.

가을이면 억새밭이 장관인 화왕산, 그 어디쯤에 관룡사라는 사찰이 있다. 정확하게는 화왕산 동쪽, 창녕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관룡산 품에 안겨 있다.

옥천 저수지를 지나고 큰 벚나무 우거진 산길을 오르면 주차된 차들로 인기를 실감하게 된다. 가을이면 오르내리는 차들과 하산하는 사람들로 마음 비우는 과정을 생략한 채 관룡사를 맞아야 한다는 게 유일한 흠이다.

작은 주차장 맞은편으로 돌계단이 있지만 사람들은 잘 닦여진 큰길을 따라 오르내린다. 돌계단 위에는 문 없는 돌담 출구 홀로 혼잡함에서 벗어나, 소박한 자태로 서 있다. 붉은 꽃무릇이 절정인, 이 운치 있는 산문이 일주문을 대신하는 것일까. 서서히 출구가 드러나면서 나는 관룡사를 사랑할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낯설지 않은 속삭임들이 서성이는 대나무 숲길, 그 끝에는 꽃무릇이 환하게 햇살에 타오르고 있다. 저곳이 극락정토가 아니라면 무엇이랴. 더 이상 등산객들의 소란함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길에 빠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근거림으로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하지만 길은 경내가 아닌 또 다른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는 절 바깥으로 이어져 있었다. 관룡사의 주된 진입로인 듯한 어수선한 공간 앞에 섰을 때야 걸어온 길을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오색연등이 터널을 이루는 계단길을 올라 천왕문으로 들어선다.

관룡사는 신라 진평왕 5년(583년) 증법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신라 8대 사찰의 하나로 이름을 떨쳤으며, 원효대사가 제자 1천여 명을 데리고 화엄경을 설법한 곳이라고 한다. 증법국사가 절을 지을 때 화왕산 위에 있는 세 개 연못에서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관룡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적당한 크기의 전각들이 관룡산을 배경으로 흐트러짐 없이 조화롭다. 절의 기운은 깊고 안정적이다. 대충 둘러보기에는 아쉬울 만큼 정감가는 사찰이다. 뒷산의 웅장한 바위절벽과 절을 둘러싼 노송들, 짜임새 있게 배치된 전각과 이름표를 단 국화분 시주들, 절은 가을의 기도로 충만하다.

웅장하지 않으면서 연륜 깊고 내실 있어 보이는 아름다운 절이다. 관광지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큰 사찰과 달리 안온한 정겨움이 흐른다. 사람 많은 대웅전을 피해 원음각 측면에 있는 약사전부터 향한다. 작은 전각에 어울리는 고려 양식의 아담한 삼층석탑이 국화분에 둘러싸여 약사전을 지키고 있다. 보물 제 146호 약사전은 관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법당 안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도 보물 제 519호이다.

법당 안에서 나올 줄 모르는 불자 한 분의 기도가 참으로 절절해 보인다. 언제나 약사전의 기도는 마음이 쓰이는 법이라 나도 바깥에서 합장만 한 후 대웅전으로 향한다. 결 고운 가을햇살이 배를 깔고 누운 대웅전 뜰과 앞마당에는 국화꽃들이 때를 기다리고 있다. 국화꽃이 일제히 개화를 하면 관룡사의 가을은 절정에 이르리라.

보물 제 212호인 대웅전 안에도 보물 제 1730호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보물 제 1816호 관음보살 벽화가 봉안되어 있다는데 법당은 내부 수리 중이다. 지그시 아래로 눈을 내리뜬 삼존불이 제 자리를 잃고 측면에 앉아 계신다. 참배자들이 많아 나는 법당문 밖에서 작품 대하듯 부처님을 감상한다. 여느 부처님보다 더 과묵해 보이는 부처님 때문인지 절은 많은 보물과 사람들 속에서도 들뜸 없이 침착하다.

남편과 나는 응진전에서 백팔배를 시작한다. 하나 뿐인 좌복을 남편이 내게 양보한 탓에, 딱딱한 마룻바닥에 스칠 남편의 무릎이 자꾸만 신경 쓰인다. 때문에 정성들여 백팔 배를 올리는 남편의 모습이 유난히 애틋하고 시리다. 하지만 백팔배를 하고나면 촉촉이 가슴 젖을 수 있는 것도 모두 부처님의 공덕이다.

우리는 서둘러 용선대로 향한다. 전망 좋은 바위, 연꽃모양의 대좌 위에 보물 제 295호 석조여래좌상이 동쪽을 바라보고 계신다. 이곳에서도 어느 불자의 낮은 기도가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었다. 부처님의 시선 어느 즈음에, 소나무 숲에 싸인 관룡사가 보인다. 용선대 여래좌상이 절을 지켜주는, 든든하고 평화로운 보금자리임이 드러난다.

조낭희 수필가
조낭희
수필가

잠시 나무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감탄사를 뿜어내는 내 눈에 명상 중인 부부가 보인다. 남쪽으로 난 바위 절벽 위에서 두 눈을 감고 좌선 중이다. 당당히 햇살에 얼굴을 노출한 채 명상에 잠긴 두 사람의 모습이 서늘하도록 아름답다. 우주의 근원, 참된 자아를 찾고 있는 구릿빛 얼굴에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그들만의 자유가 어려 있다.

서둘러 내려오는 발걸음에 무언가 허전함이 실린다.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 좌선 중인 그들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고 함께 걷는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서 맛볼 수 없는 깊고 은밀한 침묵의 기쁨을 나누는 부부, 얼핏 약사전의 여래좌상을 닮은 것 같다.

어둠 속에서도 목이 마르지 않는 지혜의 바다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손짓을 한다. 나는 다만 용기를 내지 못하거나 그 언저리를 서성대다 돌아서기를 반복한다. 부동의 자세로 떠 있는 바다, 그 바다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