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동네 어귀에 살던 새순 오빠네 집은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둘렀다. 오래전이라 동네 오빠 이름은 맞는지 확신이 없지만 탱자 울타리의 가시는 눈에 선하다.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가려면 삼십여 분이 걸렸다. 옆집 미정이를 집 앞에서 먼저 만나고, 순연이 집 앞에 가서 학교 가자고 큰소리로 외치면 얼굴이 유난히 하얗던 순연이는 책보를 가녀린 허리에 매고 달려 나왔다. 우리 셋은 서너 번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에 살았기에 학교 가는 길도, 하교 후에 짜개놀이, 숨바꼭질 같은 놀이도 같이했다.

순연이 집 근처가 마을 어귀였다. 그 옆집 울타리엔 이맘때쯤 노르스름해진 탱자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가시가 많은 담장이지만 개구멍 하나 정도는 꼭 있다. 그 집엔 아들만 셋인 것으로 기억한다. 개구진 사내아이들이 지나다닌 길이겠지. 막내아들이 나보다 몇 살 위라 그나마 초등학교를 잠깐 같이 공유했기에 희미한 기억이라도 있는 것이다. 먹을게 흔치 않던 우리는 시고 쓰고 아주 조금은 단맛이 있는 탱자가 노래지면 몰래 따 먹기도 했다. 따려고 손이 닿는 곳에 것은 동작 빠른 언니 오빠들 차지였고 우린 돌멩이를 던져서 떨어뜨리려고 했다. 그러다 보면 돌이 가시 사이에 껴 있어 탱자는 다 떨어지고 겨울이면 돌만 남아 있기도 했다. 사실 따서 먹기보단 공처럼 던지고 놀기도 하고 소꿉놀이에 반찬이 되기도 했기에 여러모로 쏠쏠한 놀이도구였다.

이제껏 내가 본 탱자나무는 낮은 키에 울타리로 선 것뿐이었다. 그런데 포항 덕동마을 옆 법성리에서 홀로 우뚝 선 어여쁜 탱자나무를 봤다. 가까이 가서 노란 탱자를 확인하기 전까진 믿기 어려웠다. 보니 탱자다. 어떻게 저렇게 키웠을까? 보경사 장독대 앞에 400년 된 탱자나무가 앉아 있다. 앉아 있다고 한 건 법성리 나무처럼 줄기를 늘씬하게 뽑아 올리지 않았단 말이다. 그 나무는 경상북도 보호수이다. 법성리 탱자나무도 멋진 자태로 보호수란 이름을 달 때까지 견뎌주길 기도했다.

/최순자(포항시 북구 용흥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