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단편집.

쇼핑을 즐긴다. 눈으로 즐기는 걸 더 좋아하지만, 가끔 보기에 좋으면 그냥 사버린다. 볼펜, 수첩, 티셔츠. 사놓고 한 번도 쓰지 않은 것들이 많다. 예뻐서 사고 특이해서 탐이 난다. 그래서 문구점에 가서 한나절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자주 가는 편집숍에는 엔틱한 소품이 많아서 주인장과 그 사연에 대해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한아름 결재하는 나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찾아온 이후로는 현장에 가서 무엇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조심스러워서 망설여진다. 책은 온라인 숍에서, 옷은 홈쇼핑에서 읽어보지도 못하고 입어보지도 않은 채 사야 한다. 쇼핑의 재미가 반으로 줄었다.

물건뿐만 아니라 책도 충동구매를 한다. 신문에 광고를 보고, 라디오나 텔레비전에 책 소개하는 걸 보고 덜렁 주문해버린다. 요즈음엔 작가별로 한정판이 자주 나온다. 김소월이나 윤동주의 첫 책이 그때의 판본 그대로 인쇄되어 경성 우체국의 직인을 찍어서 보내오는 이벤트도 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게 아니니 또 산다. 또 좋아하는 작가가 신간을 냈다는 이유로 내용도 보지 않고 사버리기도 한다.

박완서의 단편집이 그랬다. 가격도 만만찮았는데 지금 아니면 못 살 것 같아서 저질렀다. 한정판이라는데 하면서. 다른 물건도 그렇지만, 책은 절판되는 경우가 많아서 다음에 사야지 하다가 놓친 책이 여러 권이다. 그래서 눈에 들어올 때 사야 한다.

문제는 다 읽지 않는다는 점. 단행본이면 그날로 보았을 것을 방학 때 읽어야지, 주말에 봐야지, 미루다 몇 년이 흘렀다. 저렇게 묶여 있으니 차일피일 미루다 아직 못 읽은 상태다. 책꽂이를 볼 때마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을 느낀다. 다른 곳에 갔으면 사랑받으며 읽혔을 것을. 내 욕심에 갇혀 책꽂이에서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기지개 한번 켜지 못했다.

서늘한 가을이다. 볕 좋은 베란다에 오늘 하루 내어놓아야 겠다.

/이진아(포항시 남구 중앙로)